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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독일에서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독일 국적 부부가 체포됐다. 이들은 항공우주, 컴퓨터 과학,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자들과 접촉하며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첨단기술 정보를 수집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독일 사회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기술 유출과 안보 위협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독일 연방검찰은 20일 뮌헨에서 독일 국적의 쉐쥔 C.와 화 S.로 알려진 부부를 체포하고 주거지와 근무지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중국 정보기관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체포영장에 따르면 이들은 독일 대학과 연구기관의 과학자, 특히 항공우주공학·컴퓨터 과학·AI 분야 교수 및 연구자들과 접촉망을 구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민간 학술교류와 산업협력의 외피를 쓴 군사기술 접근 시도라는 점이다. 독일 수사당국은 이들이 첨단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번역자나 자동차 기업 관계자 등으로 위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민간 청중을 대상으로 한 유료 강연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에 초청됐지만, 실제 청중에는 중국 국유 군수기업 관계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이른바 ‘민군융합’ 전략과 맞닿아 있다. 민간 연구, 대학 협력, 산업 교류를 통해 확보한 기술이 군사 분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독일과 유럽 안보당국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특히 항공우주, AI, 고성능 컴퓨팅, 센서, 레이저, 무인체계 관련 기술은 민간 산업에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현대전의 핵심 기반이기도 하다.
독일 언론은 체포된 55세 남성이 뮌헨의 독일-중국 과학기술·교육·문화 교류 관련 단체와 연계돼 있으며, 독일 연구기관 및 중국의 국방산업과 관련된 대학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전했다.
독일 기독민주연합 소속 안보 전문가 로드리히 키세베터 의원은 이번 사건을 두고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지적처럼 중국의 정보활동은 단기적인 절도 방식이 아니라, 학술·문화·경제 네트워크를 활용한 장기적 침투 방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중국을 최대 교역 파트너 중 하나로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디리스킹’ 즉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기술과 공급망을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정부 역시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완전히 끊기보다, 민감한 기술 분야에서 국가안보 장벽을 높이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로이터는 독일 정부가 기술 이전 우려 속에서 대중 경제관계를 ‘디리스킹’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체포는 독일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중국 관련 간첩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 2024년에는 중국을 위해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독일인 3명이 체포된 바 있다.
당시 사건에서도 독일 대학과의 연구 이전 계약, 중국 측 정보기관과의 접촉, 군사기술로 전용 가능한 장비 수출 시도 등이 문제가 됐다.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사례도 있다. 2025년 독일 법원은 극우 정당 AfD 소속 막시밀리안 크라흐 의원의 전 보좌관 궈젠에게 중국을 위한 간첩활동 혐의로 징역 4년 9개월을 선고했다. 그는 유럽의회 활동과 독일 내 중국 반체제 인사 관련 정보를 중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았다.
또한 독일 내 미군 관련 정보도 중국의 표적이 됐다. 독일 검찰은 지난해 한 미국인이 독일 주둔 미군 관련 민감 정보를 중국 측에 제공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중국 정보기관의 관심이 독일 산업기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럽 내 미군 배치와 군사 인프라까지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반도체, 배터리, 조선, 항공우주, 원전, AI, 방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국가다. 중국의 기술 확보 전략이 독일 대학과 연구기관을 겨냥했다면, 한국의 연구소·대학·기업·방산 협력망 역시 유사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보활동이 노골적인 스파이 행위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술 세미나, 공동연구, 유료 강연, 문화교류, 번역·자문 활동, 스타트업 투자, 연구자 초청 프로그램 등은 모두 정상적인 국제교류의 형식을 띨 수 있다. 그러나 그 배후에 국가 정보기관이나 군수기업, 국방 관련 대학이 연결돼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독일의 이번 체포는 자유국가가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개방된 학문과 산업협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강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는 그 개방성을 이용해 기술과 정보를 흡수하고, 이를 군사력 강화와 체제 경쟁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교류 차단이 아니라, 정밀한 안보 검증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해외 초청, 공동연구, 연구비 지원, 강연 의뢰의 배후를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민군겸용 기술에 대한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기업과 학계에는 정보보안 교육과 신고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독일에서 드러난 중국 스파이 의혹은 한 부부의 일탈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첨단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자유진영 전체가 맞닥뜨린 구조적 경고다. 중국은 시장의 이름으로 접근하고, 학술의 이름으로 연결하며, 교류의 이름으로 기술을 흡수한다.
이제 자유국가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열어놓은 문이 협력의 통로인지, 아니면 침투의 통로인지 말이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