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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노동신문이 각지 농촌에서 앞그루 밀·보리 수확과 낟알털기를 “최단기간 내에 끝내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연일 성과를 선전하고 있다.
황해남도, 황해북도, 함경남도 등 주요 농업지역에서 농기계와 인력, 지원자들을 총동원해 수확·운반·탈곡·건조·수매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보도 전반을 들여다보면, 이는 농업 생산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소식이라기보다 북한 농촌이 여전히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비효율적 동원 체제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에 가깝다.
신문은 김정은의 발언을 앞세워 “인민들의 식량문제 해결”을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표현 자체가 북한 식량 사정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권 수립 이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주민의 기본 생존 문제인 식량 문제조차 여전히 “절박한 과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북한 농업정책의 실패를 말해준다.
특히 이번 보도는 황해남도에서 지난 20일까지 밀·보리 수확을 기본적으로 마쳤고, 일부 시·군에서는 18일까지 수확을 끝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복되는 핵심 단어는 ‘과학적 작전’, ‘총동원’, ‘사회주의경쟁’, ‘집단주의위력’, ‘지원자’ 등이다.
이는 농업 생산이 정상적인 계획과 시장, 기술, 자율적 생산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당의 지시와 정치적 동원, 경쟁 압박에 의해 밀어붙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농기계 가동률을 높이고 이동식 탈곡기와 트랙터를 총동원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이 역시 농업 인프라의 취약성을 반증한다. 정상적인 농업 체계라면 수확기마다 ‘만가동 보장’, ‘이동수리활동’, ‘운반수단 총동원’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매년 반복되는 수확 전투식 보도는 기계화 수준과 정비 체계, 운송 시스템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감추지 못한다.
황해북도의 경우 수확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자 운반과 낟알털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수확 이후 운반과 탈곡, 건조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신문이 “불리한 조건에 주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표현한 대목은, 실제 현장에서는 장마와 장비 부족, 연료난, 노동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함경남도 역시 밀·보리 수확, 탈곡, 건조, 수매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그러나 “익는 족족 와닥닥 거두어들인다”는 식의 표현은 체계적인 농업 행정이라기보다 시간에 쫓기는 비상동원 체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장마가 일찍 시작되는 상황에서 수확을 서두르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으나, 이를 ‘혁신’과 ‘장훈’으로 포장하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정치적 선전으로 덮으려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농업의 실패 원인을 주민과 현장 노동자들의 정신력 부족으로 돌리는 구조다. 보도는 운전수들의 “정신력 발동”, 농업근로자들의 “나라쌀독을 책임진 주인으로서의 본분”, 일군들의 “이신작칙”을 강조한다.
하지만 식량난의 본질은 정신력 부족이 아니라 폐쇄적 경제체제, 집단농장 중심의 비효율, 농자재 부족, 에너지난, 유통 통제, 과도한 국가 수매 구조에 있다.
정권은 농민에게 더 많이 생산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생산의 자율성, 가격 결정권, 유통의 자유, 사유 재산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농업근로자들은 노력의 성과를 온전히 보상받지 못한 채 국가 계획과 당 조직의 압박 속에서 동원된다. 이런 체제에서는 아무리 ‘사회주의경쟁’을 외쳐도 근본적인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신문은 “올해 알곡고지 점령”이라는 군사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농사를 전쟁처럼 표현하는 것은 북한 선전의 오래된 관행이다. 하지만 식량 생산은 구호와 전투식 동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안정적인 비료 공급, 농기계 현대화, 연료 확보, 토양 관리, 수리시설 개선, 시장 기능 확대, 농민의 생산 의욕 보장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번 보도에서 주민 생활의 실제 개선 여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확량이 얼마인지, 주민에게 얼마나 배급되는지, 농민들이 어떤 보상을 받는지, 식량 가격은 안정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없다. 대신 “혁신”, “경쟁”, “총동원”, “투쟁”이라는 정치적 수사만 반복된다.
이는 북한 당국이 주민의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 식량난을 관리하고 선전하는 데 더 익숙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앞그루 밀·보리 수확 보도는 북한 농업의 성과를 알리는 기사라기보다, 정권이 여전히 주민 생존 문제를 정치적 충성 경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자료다. 인민의 식량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구호와 동원이 아니라 농업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북한 당국은 매년 반복되는 “알곡고지 점령” 선전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민에게 책임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유와 권리, 생산 인센티브를 보장해야 한다.
선전의 북소리로는 빈 쌀독을 채울 수 없다. 지금 북한 농촌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동원이 아니라 구조적 개혁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