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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대] 이란을 보면 북한이 보인다.

2026-04-08 07:3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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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과 해외 망명 이란인들이 영웅이자 미래다.

벨기에 EU 본부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이란인들  리베르타임즈
벨기에 EU 본부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이란인들 - 리베르타임즈

이란을 바라보면 북한이 보인다. 두 체제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광신적 외피를 지니고 있지만, 권력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길들이고, 공포를 어떻게 통치의 도구로 삼는지에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독재는 총칼로만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움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쇠사슬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온 코끼리가 성체가 된 뒤에도 제 발목의 족쇄를 끊어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듯, 전체주의 아래 오래 길들여진 국민들은 감옥문이 열려도 쉽게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너무 오랜 세월 인간 이하의 처지로 살아오며 각인된 공포의 결과다.

바로 이 점에서 이란과 북한의 현실을 보는 자유세계의 시선은 더 정직하고 더 비통해야 한다. 왜 저들은 들고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질문에는 잔인한 무지가 숨어 있다.

이란에서, 북한에서, 권력에 맞설 의지를 가진 내부 인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임을 당했거나 감옥과 수용소로 사라졌다. 북한의 저항세력은 정치범수용소에서 사실상 절멸되었고, 이란 역시 체제에 맞서는 양심적 인물들이 처형되거나 투옥되며 사회 전체가 공포의 학습장으로 전락했다. 저항할 수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대가가 너무 처참하기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란과 북한의 주민을 향해 “왜 싸우지 않느냐”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현실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들은 권력 앞에 순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외부와 차단된 채 감옥 아닌 감옥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생존을 연명해 온 희생자들이다.

공포정치는 단지 현재의 반발을 억누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래의 상상력과 자유의지 자체를 마비시킨다. 체제는 주민들에게 저항의 언어를 빼앗고,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며, 의심과 굴종을 일상으로 주입한다. 그렇게 인간은 자유를 잊고, 자유를 꿈꾸는 능력마저 잃어버린다. 우리가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체제의 한복판이 아니라, 그 지옥을 뚫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탈북민과 해외 망명 이란인들을 보라. 이들은 단지 도피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전체주의의 본질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산 증인들이며, 동시에 이란과 북한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자유를 경험한 이들, 외부 세계와 연결된 이들, 독재의 거짓을 언어로 정리할 수 있게 된 이들이야말로 언젠가 자기 조국의 재건을 이끌 자산이다. 체제를 찬양하는 자들이 아니라, 체제의 잔혹함을 기억하는 자들이 미래를 만든다.

그래서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좌익 운동권 출신들의 태도다. 정작 이란이나 북한과 같은 혹독한 전체주의 체제를 몸으로 겪어보지도 않은 이들이, 민주화 운동의 훈장을 앞세워 이런 체제의 본질을 흐리는 언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위선적이다.

그들은 이란과 북한에서 왜 저항이 일어나지 않느냐는 냉소를 던지거나, 때로는 권력의 폭력성보다 그것을 둘러싼 지정학적 명분을 더 자비롭게 해석하려 든다. 주민의 신음보다 체제의 논리를 먼저 이해하려 드는 태도, 희생자의 공포보다 독재 권력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듯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를 말하려면 먼저 전체주의의 실체 앞에서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인권을 말하려면 먼저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침묵이 얼마나 처절한 생존의 산물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란과 북한의 주민들은 혁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 오래 짓밟혀 왔고, 너무 완벽하게 고립돼 왔으며, 너무 많은 처벌의 사례를 눈앞에서 보아 왔다. 그 침묵은 비겁의 증거가 아니라 공포정치의 성공을 증명하는 비극적 흔적이다.

지금 이란의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발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신념의 표현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폭력의 몸부림이다. 북한 역시 다르지 않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억압기제를 총동원해 온 정권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을 볼모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세계는 이 체제들을 낭만화해서도 안 되고, 주민들의 침묵을 체제 지지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대상은 권력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신음하는 주민들이며, 그들의 미래를 먼저 살아내고 있는 탈북민과 해외 망명 이란인들이다.

이란을 보면 북한이 보인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무력화시키는지, 그리고 자유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자유는 당연한 자연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지켜야 할 질서이며, 투쟁으로 유지되는 가치다.

이란과 북한의 현실을 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다. 감옥문이 열려도 나갈 수 없을 만큼 인간을 길들이는 체제야말로 가장 잔혹한 악(惡)이며, 그 악을 악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또한 이미 자유를 잃기 시작한 사회라는 사실이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리베르타임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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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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