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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8일 조선신보를 통해 백두산 천지 호반의 역사유적인 ‘룡신비각’을 소개하면서, 이를 단순한 문화유산이나 민간신앙의 흔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의 무궁한 안정을 지켜줄 천출위인의 출현”을 갈망한 조선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상징물로 규정했다.
겉으로는 민족 전통과 역사유적을 해설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백두산 신화를 김씨 일가의 혁명혈통 서사와 결합시키려는 전형적인 체제 선전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조선신보의 설명에 따르면 ‘룡신비각’은 원래 백두산 천지 호반에 세워졌으며, 비석 앞면의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 뒷면의 “지궁” 등의 글귀는 백두산과 천지를 지키는 ‘룡왕’과 ‘룡신’에 대한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조선 사람들이 백두산 천지를 지상의 궁전으로 여기며 나라의 번영을 기원했고, 일제 침략으로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는 백두산의 룡왕룡신에게 민족의 운명을 의탁했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해설이 역사적 맥락의 충실한 복원이 아니라, 결국 “천출위인 출현”이라는 정치적 결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이 오랜 기간 반복해온 선전 방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자연, 전설, 민간신앙, 유적, 고사(故事)까지 모두 최고지도자 우상화의 재료로 재편하는 것이다.
백두산은 본래 한민족의 상징적 공간이지만, 북한은 이를 끊임없이 ‘혁명의 성산’, ‘백두혈통’, ‘천출위인’의 발원지로 신격화해왔다. 이번 ‘룡신비각’ 보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역사유적 자체에 대한 학술적 고찰보다, 그것을 오늘의 권력 정당화 서사에 끼워 맞추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는 셈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북한이 전통적 민간신앙 요소까지 체제 유지 논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면상 북한은 사회주의와 과학주의를 내세우며 봉건적 미신이나 종교적 요소를 배격해왔다.
그러나 정작 필요할 때는 ‘룡왕’, ‘지궁’, ‘하늘의 조화’, ‘천출위인’ 같은 신비주의적 표현을 거리낌 없이 호출한다. 체제가 요구하는 것은 일관된 사상체계가 아니라, 주민의 감정과 상상력을 동원해 지도자 숭배를 강화하는 데 유용한 상징 자원의 총동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룡신비각’ 보도는 문화유산 소개가 아니라, 백두산을 매개로 한 권력 신성화 작업의 일환이다. 민족의 역사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특정 가문의 통치 운명론으로 바꾸어 놓는 정치적 편집이자 상징 조작이다.
백두산이 정말 민족의 산이라면, 그것은 어느 한 체제나 한 집안의 신화적 배경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역사와 기억 속에 자리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역사유적을 말할 때마다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보존하려는 것은 유적 그 자체가 아니라, 유적 위에 덧씌운 권력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