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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대한민국의 정치인인 조국 대표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경우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만큼 한국이 그를 체포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얼핏 보면 원칙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의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법과 외교, 안보의 복합 현실을 너무 가볍게 재단한 위험한 인식이며, 국제문제를 도덕 교실의 흑백논리처럼 다루는 태도 역시 정의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유아적이다.
정치인의 언행에는 더 높은 수준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국제형사법의 원칙을 말하려면, 그것이 실제 외교·안보 질서 속에서 어떤 파장을 낳는지까지 함께 말해야 한다. 중동은 지금도 전쟁과 테러, 핵 확산, 해상교통, 미·이란 충돌 위험이 중첩된 초고위험 지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인이 국제법 조문 하나만 붙들고 흔드는 것은 국가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는 자세가 아니다. 법을 말하는 척하면서 국제정세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발언이 과연 보편적 정의감에서 나온 것이냐는 점이다. 정말로 모든 사안을 그처럼 단호한 정의의 잣대로 재단한다면, 러시아 푸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맞다. ICC는 푸틴에 대해서도 이미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몽골이 2024년 푸틴 방문 당시 체포하지 않은 일을 두고 ICC 재판부는 비협조 판단까지 내렸다. 네타냐후에게만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고, 푸틴 문제에서는 침묵하거나 얼버무린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표적 정치다.
이 대목에서 많은 국민은 묻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전쟁에는 얼마나 일관되게 분노했는가. 중국 공산당의 자국민 통제와 소수민족 탄압, 홍콩의 자유 말살에는 얼마나 단호했는가. 2천만 북한 주민을 사실상 인질로 붙들어 놓고 핵무력과 세습독재를 휘두르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는 얼마나 엄정했는가. 대북 원조나 대화, 대중 유화, 반미 정서에는 놀랄 만큼 관대하면서, 특정 대상에게만 국제정의의 칼날을 번쩍 치켜드는 모습이라면 국민이 그것을 위선으로 받아들인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순간 선전이 된다. 인권은 편리한 적에게만 들이대는 순간 위선이 된다. 국제법도 마찬가지다. 법은 진영의 무기가 아니라 원칙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 일각은 국제형사재판소를 냉혹한 현실과 정교한 외교를 함께 고민하는 법정으로 보지 않고, 국내정치용 도덕 과시 무대로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다. 국가의 외교안보 문제를 자기 진영의 도덕 우월감 전시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정의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네타냐후만이 아니라 푸틴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라. 중국과 북한의 폭정과 인권유린에도 같은 도덕적 긴장감을 유지하라. 국제법을 말할 때는 그 법이 불러올 외교·안보적 결과까지 책임 있게 설명하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함부로 정의를 입에 올리지 않는 편이 낫다.
국민은 이제 다 안다. 늘 그래왔듯 어떤 사안에는 목청을 높이고, 어떤 사안에는 침묵하는 선택적 분노를. 어떤 독재에는 눈을 감고, 어떤 대상에게만 의로운 척하는 익숙한 위선을. 정의로운 척, 선한 척하는 말의 포장은 화려할지 모르나, 그 안에 일관성과 책임이 없다면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한 넋두리뿐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