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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한 국가의 정부가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겨냥하고, 여기에 정치적 구호와 여론몰이를 덧씌우는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어떤 도덕적 포장을 하든, 국가권력이 특정 기업을 향해 집단적 공격의 신호를 보내는 순간 시장의 자유와 법치의 원칙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최근 한국 정부의 작태는 참으로 야만적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법과 제도에 따라 공정하게 감독하고, 문제가 있다면 절차에 따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기업을 상징적 표적으로 삼아 여론의 분노를 유도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는 방식은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행정이 아니라 선동이며, 법 집행이 아니라 정치적 공격이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이 과정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잘못이 있다면 법에 따라 조사하고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 특정 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고, 마치 국민적 심판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는 공정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폭력이며, 정치적 목적을 위한 희생양 만들기에 가깝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국가권력의 하급기관이 아니다. 기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경제 주체이며, 소비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압박한다고 해서 국민이 무조건 그 선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잉 공격은 국민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 가자!”라는 풍자는 바로 그 지점을 찌른다. 권력이 때릴수록 시민은 묻는다. “왜 정부가 특정 기업을 이렇게까지 공격하는가?”
정부가 특정 기업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박수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전체주의는 언제나 선한 명분을 내세운다. 공익, 정의, 국민, 개혁이라는 말을 앞세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개인과 기업,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국가권력 아래 종속시키려는 충동이 숨어 있다.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을 지목하고, 여론을 동원해 공격하며, 이를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정부는 기업을 심판하는 군중의 지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법치의 관리자여야 하며, 공정한 심판자여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투명한 절차와 명확한 기준으로 다루면 된다. 그러나 특정 기업을 정치적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고, 이를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활용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국민은 더 이상 이런 선동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어느 기업이든 잘못이 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은 또 다른 폭력이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과 정부가 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법치이고, 후자는 권력 남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의 정치가 아니라 절제된 법치다. 특정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행태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선택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야만적 기업 때리기를 중단하고 자유로운 시장과 시민의 선택을 권력의 도구로 삼지 말라. 민주주의는 정부가 특정 기업을 공격할 자유가 아니라, 정부의 공격으로부터 시민과 기업을 보호하는 질서 위에 서 있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