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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문을 싣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강조했다. 올해가 「중조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5주년이라는 점을 앞세워, 중국과 북한이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주의 이웃”이며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에 함께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고문을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만 볼 수는 없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과 기고문은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확대, 국제 제재 회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메시지다. 겉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에 맞서는 전체주의 진영 결속의 신호탄에 가깝다.
“친선”의 이름으로 포장된 독재의 공생관계
시 주석은 기고문에서 중·북 관계를 “피로써 맺어진 전투적 친선”이라고 표현했다. 6·25전쟁 당시 중국군의 참전을 양국 우의의 출발점처럼 미화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피의 친선’은 결코 낭만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 공산화를 막기 위해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이 희생된 전쟁의 기억이다.
중국과 북한이 말하는 “전통적 친선”은 자유와 인권의 연대가 아니다. 그것은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상호보증 장치에 가깝다. 북한은 중국의 외교적·경제적 후견을 통해 체제를 연명해 왔고, 중국은 북한을 한반도에서 전략적 완충지대로 활용해 왔다. 두 나라가 말하는 “운명공동체”의 본질은 주민의 자유가 아니라 정권의 생존이다.
평화를 말하면서 핵에는 침묵하는 모순
시 주석은 기고문에서 “지역의 항구적인 안전”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 평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했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으며, 핵물질 생산과 전략무기 개발을 노골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시 주석의 글에는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려는 메시지보다 북한 정권을 감싸고 국제적 압박을 무력화하려는 기조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주장도 공허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점에서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북한과 “전략적 협조”를 강화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국제법 수호가 아니라 국제법의 선택적 적용에 불과하다.
북·중·러 전체주의 삼각연대의 위험성
이번 기고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패권주의와 강권정치 반대”라는 표현이다. 중국과 북한은 이 표현을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겨냥하는 외교적 암호처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동북아의 불안을 키우는 주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아니라 핵으로 협박하는 북한, 대만해협을 압박하는 중국,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지속하는 러시아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확대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워 왔다. 중국은 이를 공개적으로 강하게 제어하기보다 북한을 다시 자국의 전략적 궤도 안에 묶어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북·중·러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밀착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는 새로운 냉전적 대결 구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기보다 비호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보다 더욱 고도화하며, 러시아가 이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굳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과 일본, 나아가 인도·태평양 전체의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의 우세”라는 말 뒤에 감춰진 주민의 고통
시 주석은 기고문에서 중국과 북한이 “사회주의의 뚜렷한 우세와 밝은 전망”을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현실은 그 수사와 정반대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통제국가이며, 주민들은 이동·표현·신앙·정보 접근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정권은 핵과 미사일, 군사력 과시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역시 자유로운 시민사회, 언론, 종교,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억압해 왔다. 그런 두 체제가 서로를 “사회주의 동행자”라고 부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발전과 안정이 주민의 존엄이 아니라 당의 지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의 안보가 곧 국가의 안보이고, 당의 생존이 곧 인민의 행복이라는 논리는 전체주의 체제의 전형적 언어다. 이번 기고문도 바로 그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대한민국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시진핑 기고문은 단순한 축사나 외교적 인사말이 아니다. 그것은 중·북 관계가 다시 전략적 밀착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선언문이다. 특히 “길을 바꾸거나 뜻을 변치 말아야 한다”는 표현은 북한 체제의 현상유지를 지지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한민국은 이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중국이 알아서 북한을 압박해 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체제 안정이라는 전략적 이익을 우선해 왔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대응은 분명해야 한다. 첫째,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흔들림 없이 강화해야 한다. 둘째, 유엔 대북제재 이행과 감시체계를 복원·강화하는 국제공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셋째, 북한 주민의 인권과 정보 자유 확대를 한반도 정책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넷째, 중국을 향해서도 북한 비핵화와 국제규범 준수에 대한 책임 있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친선’이 아니라 책임을 말해야 할 때
중국과 북한은 “친선의 새로운 장”을 말한다. 그러나 그 친선이 핵무장 독재를 비호하고, 국제 제재를 약화시키며,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평화의 장이 아니라 위기의 장이다.
진정한 평화는 독재정권끼리의 결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핵 협박의 포기, 주민 인권의 존중, 국제규범의 준수, 주변국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에서 나온다.
중국이 정말로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을 말하고자 한다면, 북한 정권을 향해 축하와 연대의 언어를 보낼 것이 아니라 핵 포기와 주민 인권 개선, 국제사회와의 책임 있는 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기고문은 “중조친선”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 속에 감춰진 전체주의 연대의 민낯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