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약 7만 명의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세우타(Ceuta)로 밀려들었다. 인구 8만4천 명의 해안 도시 세우타는 모로코 해안을 따라 더 남쪽에 위치한 멜리야(Melilla)와 몇몇 섬들과 함께 북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스페인 영토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오랜 역사를 지닌 이베리아의 땅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은 1415년 세우타를 장악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이곳은 사실상 스페인 영토가 되었고, 1668년 포르투갈이 공식적으로 세우타를 스페인에 양도한 이래 스페인은 줄곧 이 지역을 지배해 왔다. 바로 이것이 지난주 벌어진 위기가 그토록 심각한 이유다.
이주민들은 압도적으로 젊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세우타로 들이닥쳐 보안 장벽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가로질러 행진하면서 절도와 약탈을 자행했다. 그것은 장 라스파유가 1973년 자신의 디스토피아 소설 『성인들의 진영』(The Camp of the Saints)에서 상상했던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한때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고 때로는 금서가 되기까지 했던 이 소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공적 담론의 주류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오늘날 다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주민들의 범죄행위를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가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는 모습을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세우타에서 이주민들은 정복자가 아니라 습격자처럼 왔다. 며칠이 지나자 굶주림에 시달리고 슈퍼마켓에서도 쫓겨난 많은 이들이 모로코로 돌아갔다. 스페인 사법당국은 현재 남아 있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추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천 명이 산악지대에 숨어 있다. 대부분이 떠났기 때문에 페드로 산체스의 스페인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에 대해 솅겐협정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던 다른 나라들의 목소리도 사라졌고, 이주민 유입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이 더 많은 연대를 보여야 한다는 익숙한 요구로 바뀌었다. 이번 위기를 의도적으로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은 모로코를 향한 설전도 잦아들었다. 스페인 내무장관 페르난도 그란데마를라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놀라운 발언이다. 산체스 자신이 친이민 진보주의의 세계적 옹호자를 자처하면서 이주민들이 스페인으로 오도록 유인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 초 그의 정부는 불법 체류자 50만 명에게 사면과 사회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스페인은 해마다 이주민 지원에 18억 유로 이상을 지출하면서도 불법 입국을 막는 데에는 6천만 유로만을 쓴다. 또한 모로코의 친이민 성향 진보주의 NGO들에도 자금을 제공한다.
스페인 국내에서는 산체스 정부가 보호자 없는 미성년 이주민을 수용하는 데 쓰이는 지원금도 늘렸다. 게다가 지난 7월 스페인 대법원이 세우타와 멜리야로 헤엄쳐 들어오려다 붙잡힌 이주민들을 추방하기 어렵게 만드는 판결을 내렸을 때, 내무부는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임박했다는 정보기관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란데마를라스카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라스파유의 소설에서 그대로 대응되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성인들의 진영』은 인도 아대륙에서 100만 명의 이주민이 낡고 위태로운 선박들로 이루어진 선단을 타고 프랑스를 향해 출발하는 이야기다. 이주민 출신국의 정부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떠한 책임도 일절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인도주의 원칙에 감동한 프랑스 정부는 이주민들을 위한 환영행사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비용 문제 앞에서 주저하던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게 “관대함의 부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자”고 요청하고, 심지어 그 선단을 유엔의 보호 아래 두는 방안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주민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어려운 선택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피한다. 그 대신 더 많은 식량과 원조, 혹은 폭풍이 낡은 선단을 멈추게 하거나 침몰시켜 자신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단이 프랑스 해안에 도착할 시간이 임박하자 프랑스 대통령은 마침내 행동해야만 한다. 그는 대국민 연설에서 선언한다.
“나는 우리 국군에 그들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약한 존재를 앞에 두고 비겁해지는 것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교묘하며, 가장 치명적인 비겁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 흔들리기 시작한다. 준비된 연설문을 버리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군인, 모든 경찰관, 모든 헌병, 모든 장교”를 그들의 임무에서 풀어준다. 이제 각자가 스스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정치적 책임 포기의 궁극적인 형태다. 권위가 스스로를 부정한 것이다.
라스파유는 이렇게 쓴다. “계몽주의의 프랑스가 스스로 무릎을 꿇었으니”, 이제 다른 어느 서구 정부도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을 떠맡을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이주민들이 아직 상륙하기도 전에, 바로 그 행위로써 프랑스와 하나의 문명 전체가 자살해 버린다.
2015년 이후 유럽으로의 대규모 이주가 정치적 위기가 된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유럽의 엘리트들은 관대한 난민·망명 제도를 제공함으로써 입국은 쉽게 하고 추방은 어렵게 만들었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사람이나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이나 모두 개인별 사법절차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이주민들이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납세자의 돈으로 법률 지원과 복지, NGO의 지원까지 받는다.
그러나 유럽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체제가 제2차 세계대전의 오점으로부터 자신들을 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제도가 더 많은 이주민들에게 위험한 여정에 나서도록 유인한다.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갓 재통일된 독일은 엄청난 규모의 이주민 유입을 감당해야 했다. 전후 독일의 헌법 자체가 그런 상황을 불러들였다. 1949년 독일 기본법 제16조는 독일연방공화국이 전체주의 국가들, 곧 철의 장막 뒤에 있던 나라들로부터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관대한 망명 규정을 보장했다.
수백만 명의 유고슬라비아인들이 다른 나라들을 거쳐 독일의 망명 약속을 찾아왔다. 독일은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세계가 변화하고 있었으며, 기본법 제16조가 인도주의적 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속하게 헌법을 개정해 망명 신청을 제한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상황에 맞추어 이처럼 제도를 조정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제 서른두 살이 된 유럽연합은 자신이 전후 시대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도덕적 신화 만들기에 맞추기 위해 법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왔다.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찾아 나서는 이주와 정당한 난민·망명 신청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다. 유럽은 그들 모두를 받아들여야 할 동일한 인도주의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이 또 하나의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후주의(postwar-ism)’라는 이념이라고 부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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