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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가 100세를 맞은 한 일본인 여성의 삶을 또다시 북한 체제의 ‘은덕’을 선전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한 인간이 살아온 100년의 세월조차 결국 김씨 일가와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서사로 귀결되는 북한 선전매체 특유의 방식이다.
조선신보는 지난 6일 평양 모란봉구역에 사는 안미호 씨가 올해 2월 23일 100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남편 강영훈 씨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으며, 신문은 그가 “조선로동당과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공화국 공민으로서의 값 높은 삶을 누리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은이 보낸 생일상을 받은 사진까지 소개하며 그의 장수를 북한 체제의 ‘배려’와 연결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안 씨가 북한으로 건너간 1960년이라는 시점부터 살펴봐야 한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에서는 이른바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진행됐다. 이 기간 약 9만3천 명의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가족 등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당시 북한은 재일동포들에게 주택과 식량, 의복 등이 보장되는 ‘지상낙원’을 선전하며 이주를 장려했다. 그러나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은 이러한 선전과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2023년 일본 도쿄고등재판소는 북한 당국이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을 허위 선전으로 북한으로 유인한 뒤 가혹한 환경에서 살게 했다며 북한 정부의 인권침해 책임을 인정했다. 북한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사실상 막았다는 것이 소송 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문제였다.
바로 그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1960년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여성의 삶을 소개하면서도 조선신보는 북송사업의 실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안 씨가 북한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일본의 가족들과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었는지,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원한 적은 없었는지, 북한 국적을 선택한 과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없다.
오직 “사회주의제도의 품”, “값높은 삶”, “원수님의 은정”만 존재한다. 이것이 북한 선전매체가 개인의 삶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개인의 희로애락이나 선택은 사라지고, 모든 인생사가 결국 ‘당과 수령의 은덕’을 입증하기 위한 정치적 소재로 재구성된다.
특히 일본인 배우자들의 삶은 더욱 민감한 문제다. 당시 수많은 일본인 여성들이 재일조선인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다.
북한이 정말 이들의 삶을 자랑하고 싶다면 100세 생일상을 보여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일본 방문과 귀환의 자유가 있었는지부터 공개해야 한다. 진정 행복한 사회라면 주민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안 씨가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아왔을 가능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한 개인의 삶과 감정은 외부에서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북한 매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체제 선전의 증거처럼 제시하면서 그와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수많은 북송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한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장수와 행복이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한다면, 그 체제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수많은 탈북민과 북송 피해자들의 증언 역시 똑같은 무게로 다뤄야 한다. 그러나 북한 선전에는 그런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100년을 살아온 한 여성의 인생보다 기사에서 더 크게 등장하는 것은 결국 ‘수령의 생일상’이다.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체제를 이야기하고, 개인의 추억을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김씨 일가의 ‘은덕’을 강조한다.
조선신보가 정말 안미호 씨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면 생일상 사진 한 장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66년 전 북한으로 건너간 그에게 다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돌아갈 자유도 있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조선에서 누린 값 높은 삶’이라는 표현은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선전에 가깝다.
그리고 북송사업의 수많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존재하는 한, 한 일본인 여성의 100세 생일을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미담으로 포장하는 것은 역사의 절반을 의도적으로 지운 이야기일 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