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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광복마저 ‘김일성 영웅신화’로 독점하는 사회

2026-08-11 21:17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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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보다 세습체제 정당화가 먼저인가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8·15 광복의 역사를 또다시 김일성 개인의 ‘항일 영웅신화’로 포장하며 김씨 일가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민족사의 중대한 전환점마저 한 개인과 특정 가문의 업적으로 독점하는 북한식 역사서술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매체는 최근 「빨찌산 김대장의 영웅신화는 우리 조국과 인민의 영원한 긍지이다」라는 글을 통해 8월 15일을 “김일성이 항일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날”로 규정했다. 김일성을 “항일의 전설적 영웅”, “절세의 애국자”, “만고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그의 항일무장투쟁이 사실상 조선 해방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것처럼 서술했다.

그러나 이는 광복의 복합적인 역사적 배경을 철저히 지워버린 정치적 신화화에 가깝다.

1945년 한반도의 해방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이루어졌다.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유격대 활동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일본제국의 항복과 한반도 해방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낸 결정적 군사력으로 확대하는 것은 역사적 비중과 결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더구나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무장투쟁과 외교활동, 교육운동, 문화운동, 비밀결사와 의열투쟁을 벌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활동했고, 만주와 연해주를 비롯한 각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의 독립운동 세력들이 희생을 감수했다.

그럼에도 북한의 서술에서는 이 거대한 독립운동사가 사실상 사라지고 김일성 한 사람만 남는다.

특히 이번 글은 ‘역사’를 기록하기보다 ‘신화’를 생산하려는 의도를 스스로 숨기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영웅신화’를 내세우고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군사적 기적”, “백전백승”, “만고불멸의 영웅서사시” 등의 표현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객관적인 사료 검증이나 군사적 성과에 대한 구체적인 비교보다는 초인적인 영도자 한 사람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서사가 중심이다. 이 같은 역사서술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서 김일성 신화가 과거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글의 후반부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곧바로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으로 연결한다. 김일성의 ‘백전백승의 역사’가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게 계승되고 있으며, 오늘날 북한이 김정은의 영도 아래 “휘황찬란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논리다.

결국 항일역사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현 지도자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자산으로 동원된다. 이는 북한의 이른바 ‘백두혈통’ 통치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신성화하고, 그 신성성을 혈통을 통해 후계자에게 이전함으로써 세습권력을 혁명전통의 계승으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정당성이 혈통으로 상속될 수는 없다. 설령 선대가 아무리 큰 공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후손에게 무제한적인 정치권력을 물려줄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국가의 주권은 특정 가문의 역사적 공적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현대 국가의 보편적 원칙이다.

북한의 광복절 서사가 더욱 모순적인 것은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인민에게 지도자를 선택하거나 교체할 실질적인 정치적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체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에서 “자주의 정신”, “단결의 이념”, “승리의 법칙”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주란 지도자가 인민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역사를 신화로 바꾸기 시작하면 불편한 사실은 사라진다. 김일성 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해방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축소되며, 광복 이후 북한에서 벌어진 정치적 숙청과 권력독점, 세습체제 형성과정 역시 ‘혁명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다.

그 결과 역사교육은 과거를 탐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최고지도자를 찬양하기 위한 정치교육으로 변질된다.
8·15는 어느 한 사람의 전승기념일이 아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이름 없이 희생된 민중이 함께 기억되어야 할 민족사의 날이며,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라는 거대한 국제정세 속에서 찾아온 해방의 날이다.

그 복잡한 역사를 지우고 모든 공을 ‘빨찌산 김대장’ 한 사람에게 돌리는 순간 광복의 역사는 역사에서 우상화의 재료로 바뀐다.

북한이 진정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김일성을 신화에서 역사 속 인물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공과 과를 검증하고 수많은 독립운동 세력의 역할을 함께 인정하며 주민들이 자유롭게 역사를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이번 글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영원한 영웅신화’로 만들고, 그 신화를 다시 김정은 통치의 정당성으로 연결하고 있다.

광복 80여 년이 지나도록 북한이 8·15를 한 가문의 통치신화를 강화하는 정치적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북한 사회가 아직도 ‘혁명전통’이라는 이름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복의 주인은 한 명의 ‘김대장’도, 하나의 ‘백두혈통’도 아니다. 역사를 특정 가문의 소유물로 만드는 순간, 해방의 역사는 오히려 또 다른 권력의 족쇄가 된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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