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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29] 침묵하고 경청하라

2026-08-13 07:3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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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아일라스 Adam Eilath leads K-12 education for the Tikvah Fund. Tikvah Fund교육 담당


교황 레오 14세는 「위대한 인류애」(Magnifica Humanitas)에서 학교란 젊은이들이 “진리를 찾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가 “탐구와 성찰, 식별”을 밀어내는 교육 문화를 우려한다. 그가 제시하는 처방은 놀라울 만큼 전통적이다. 교육에는 “침묵, 깊이 있는 학습, 독서, 신중한 분석”의 리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레오 교황은 비판적 사고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들이 학교에 당연히 기대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로 비판적 사고의 함양을 명시적으로 꼽는다. 그러나 판단은 그에 앞서는 실천들이 쌓인 끝에 도달하는 결실로 제시된다. 우리는 독서를 하나의 기능으로, 또 비판적 작업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정교한 어휘를 갖고 있지만, 그보다 앞서 일어나는 일, 곧 어떤 책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면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빈약한 언어를 갖고 있다.

문제는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갖는 데 있지 않다. 좋은 교육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더욱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독립성을 즉각성과 혼동할 때 생겨난다. 어떤 주장을 이제 막 접한 아이에게 곧바로 그 주장에 동의하는지를 묻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더 많은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는 판단할 만한 것을 충분히 갖추기도 전에 판단하도록 요구받은 셈이다.

유대 문명은 수 세기 동안 이 문제와 씨름해 왔다. 그 지적 생활이 전승된 문헌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왔기 때문이다. 『피르케이 아보트』(선조들의 윤리)는 배움에 관한 설명을 매우 의미심장한 동사로 시작한다. “모세는 시나이에서 토라를 받았고[kibel],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전하였다.”

모세에 앞서 무언가가 존재한다. 모세는 전달하고, 해석하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받는다. 이는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교육학적인 의미도 갖는다. 학생은 세상 최초의 독자로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보다 앞서 형성된 언어와 역사, 논쟁과 책들의 한가운데에 도착한다.

그러나 유대교의 학문 전통은 ‘받아들임’을 결코 수동성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탈무드의 『베라코트』(Berakhot) 편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순서가 제시되어 있다. 랍비들은 성경의 구절 하스케트 우셰마 이스라엘(hasket u-shema Yisrael), 곧 “이스라엘아, 잠잠히 하고 들으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배움의 두 단계를 구별한다. 먼저 듣고, 그다음 분석하고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4세기 바빌로니아의 현자 라바(Rava)는 이 원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말한다. 먼저 토라를 공부하여 그 내용에 정통해진 뒤, 비로소 그것을 깊이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랍비들은 비판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반대한 것은 너무 이른 비판이었다.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문헌을 막연하게 접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신명기는 부모들에게 토라의 말씀에 관하여 베쉬난탐(veshinantam), 곧 “너희는 그것을 부지런히 가르쳐라”라고 명한다. 탈무드는 이 히브리어 어근에서 ‘날카로움’이라는 의미를 읽어낸다. 말씀은 질문을 받았을 때 곧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입 안에서 날카롭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 유창함, 정확성, 반복은 사고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고에 필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랍비들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생생한 어휘를 발전시켰다. 탈무드의 『호라요트』(Horayot) 편에서 라브 요세프는 전승된 자료들을 탁월하게 통달했다는 의미에서 “시나이”라고 불린다. 반면 랍바(Rabba)는 날카로운 분석 능력 때문에 “산을 뿌리째 뽑는 자”라고 불린다.

어느 쪽이 우선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현자들은 “시나이가 더 낫다”고 답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밀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추론이 의존할 지적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호라요트』가 논하는 것은 현대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문적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비유는 오늘의 교육자들에게도 유익한 경고가 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밀’을 갖게 해주기도 전에 ‘산을 뿌리째 뽑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매혹될 수 있다. 분석에는 분석할 대상이 필요하다. 독창성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유산이 필요하다. 판단에는 저자의 주장이 무엇인지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확고한 지식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다소 구식으로 보이는 몇몇 교실 관행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성경 속 어떤 연설에 동의하는지를 묻기 전에, 먼저 누가 말하고 있으며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학생에게 링컨을 비판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링컨의 언어가 지닌 리듬과 논증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의 말이 학생의 기억 속에 충분히 스며들게 해야 한다. 시를 암송하게 하라. 그리고 때로는 아이들이 가치 있는 문장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게 하라.

최근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열린 서양 문명에 관한 티크바 학술회의에서 주디스 밸런 박사는 흘림체 필기가 “연속적인 움직임, 순서화, 계획”을 요구하며 “소근육 운동 조절, 시각적 식별, 지속적인 주의집중”을 훈련시킨다고 주장했다. 교육의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흘림체가 “세심함과 정확성에 보상을 주며” 학생들이 “탁월함의 기준”을 습관화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이다.

이 주장은 흘림체의 소멸이 단순한 필체의 문제 이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받아들임’의 형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편의를 위해 고른 문장으로 글씨 쓰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때로는 문장의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새로운 필체를 배우는 아이가 천천히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고 써볼 수도 있다. 또는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써볼 수도 있다. 로마사를 배우는 학생은 ‘veni, vidi, vici’, 곧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문장을 직접 써보고, 그 몇 마디 안에 응축된 인간의 야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점은 베껴 쓰기가 곧 동의를 낳는다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라는 요구를 받기에 앞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언어 안에 한 글자 한 글자 들어가 살아보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밸런이 독특한 필체로 쓰인 미국 「독립선언서」를 두고 지적하듯이, 하나의 글은 내용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지닐 수 있다. 손으로 쓰는 행위는 받아들이는 속도를 늦추고, 언어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하며, 기억할 만한 말들이 문자 그대로 몸에 새겨진 배움, 곧 체화된 배움이 되게 한다.

여기서 지적 활동에는 하나의 순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받아들임, 소유함, 질문함, 판단함, 그리고 그 뒤에야 비로소 독창성이라 부를 만한 것이 온다.

학생은 주권자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은 무언가를 받아들인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만큼 면밀히 배우고, 질문하고, 논쟁하며, 마침내는 거기에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더할 수도 있다.

레오 교황은 인간 인격의 형성을 다시금 교육에 관한 우리의 대화 중심에 놓음으로써 중요한 기여를 했다. 유대 문명은 이 대화에 오래된 하나의 통찰을 보탤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모든 책 위에 재판관처럼 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가치 있는 책 앞에 학생으로 서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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