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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34] 제이슨 아데이와 자비 없는 거짓말

2026-08-18 07:4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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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 맥그루 Bethel McGrew writes the newsletter Further Up. 뉴스레터 발행인


케임브리지의 ‘신동’ 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의 몰락은 올여름 영국 언론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그가 수많은 불가능에 가까운 역경을 극복하고 학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늘어놓은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허구였음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해체된 것은 올해에 들어서였다. 그리고 사흘 전, 그의 이야기는 자살로 보이는 죽음이라는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독자들을 등장인물만큼이나 증오하는 작가가 쓴 가학적인 풍자소설에서 마지막으로 칼을 한 번 더 비트는 장면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에는 음울한 아이러니가 있다.

누가 제이슨 아데이를 죽였는가? 스펙테이터는 젊은 흑인 허풍쟁이를 초고속으로 발탁하여 DEI의 스타로 만든 엘리트들이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이브람 X. 켄디는 그를 집요하게 추궁한 언론인들이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좌파와 우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이 인종차별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쓴 사람은 제이슨 아데이 자신이었고, 그 결말까지도 그러했다.

우파의 많은 이들은 이번 스캔들 내내 아데이가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 쪽에 가까웠다고 정확히 지적해 왔다. 그는 자신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법원과 경찰을 동원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들 가운데에는 로스 다우댓이 아마도 명백히 ‘탈그리스도교적 우파(post-Christian right)’의 어조라고 부를 법한 것들도 일부 있었다.

큰 반향을 일으킨 게시물에서 에릭 S. 레이먼드는 아데이의 퇴장을 “명예로운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일이 비슷하게 자격이 부족한 DEI 채용자들의 “모방 자살의 물결”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공상과학 작가 데번 에릭슨은 요점을 더욱 노골적으로 말한다. “내 친구들이 다치는 것보다 내 적들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응들은 그 이교도적 잔혹함이 놀라울 정도로 노골적이다. 정의와 자비라는 그리스도교화된 틀을 통째로 내던지고, 그 자리에 명예와 수치라는 틀을 세운다. 곧 아데이 같은 나약한 인간은 인류에게 수치를 안겨 주었으니, 그의 생명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없으면 우리는 더 강해진다. 잘 없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 못지않게 탈그리스도교적인 좌파가 아데이에게 들려준 거짓말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너의 가치는 네가 자신에 대해 꾸며낸 거짓말만큼뿐이다. 그 거짓말들이 사라지면 네 삶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사이먼 앤드 슈스터가 유통을 중단하지 않은 아데이의 회고록에는 이른바 ‘예언’들이 아낌없이 흩뿌려져 있다. 가족과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들까지 반복해서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며, ‘선택받은 자’이고, 위대한 일을 하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미 거짓으로 입증된 다른 주장들 가운데 그는 자신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문맹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바탕으로, 한 진로상담관이 자신에게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어떤 직업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에 격분한 그의 어머니는 그 상담관에게 언젠가 자신의 아들이 “위대하고,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해낼 것”이라고 쏘아붙인다. 아데이는 또 자신의 남동생의 입을 빌려, 자신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주파수에서 작동한다”고 말하게 한다.

이러한 조작된 이야기들은 아데이와 함께 성장한 사람들의 증언과 고통스러울 만큼 대조적이다. 그 가운데에는 그가 열한 살까지 말을 하지 못하는 자폐인이었다는 주장 역시 반박한 학교 동창들도 포함된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데이는 조금 수줍음이 많고 어쩌면 자폐 스펙트럼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 이웃의 표현처럼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다.

물론 아데이가 실제로 그토록 심각한 장애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태중에서 미리 알아낼 방법이 있었다면, 훗날 그를 떠받들었던 바로 그 엘리트 문지기들은 그를 낙태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무력하고 장애를 지닌 사람은 불편한 존재이며,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에게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릴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데이가 믿었던 ‘위대함’의 정의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결코 “위대하고,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대담하게도 작고 감추어진 삶 역시 조금도 덜 ‘위대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오히려 우리가 더 무력하고 이룬 것이 적을수록,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젊은 남자들은 오래 남을 명성과 전설적인 업적이라는 형태의 위대함을 갈망해 왔다. 그러한 야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겸손으로 절제되지 않는다면, 그 야망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세라 디텀은 가슴 아프게도 아데이를 비운의 아마추어 요트 선수 도널드 크로허스트에 비유한다. 크로허스트는 1968년 자신의 배가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무리였던 세계일주 요트 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일곱 달 동안 실제로는 달성하지 못한 항해 이정표를 달성했다는 거짓 보고를 송신했다. 결국 그를 죽인 것은 항해 자체의 위험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직면할 수 없었던 그의 무능력이었다.

아데이는 지적 위대함뿐 아니라 운동 능력에서도 위대함을 주장했다. 그 가운데에는 엿새 동안 600마일을 달렸다는, 명백히 터무니없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운동 재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 친구들은 그를 재능 있는 축구 골키퍼로 기억한다. 고등교육계로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 전에는 체육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의 소박한 재능조차 하느님의 인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그 재능을 창조주께 봉헌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는 어떤 충만함을 발견했을까? 그리고 그 창조주께서 우리가 공상 속에서 만들어낸 모습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그가 믿었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크로허스트의 마지막 항해일지는 모든 희망과 이성을 잃어버린 한 인간이 비참하게 휘갈겨 쓴 기록이다. 마지막 몇 쪽에는 광기 어린 횡설수설과 고백, 그리고 유서가 뒤섞여 있다.

“나는 나일 뿐이며, 내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을 이제 안다.…… 끝났다. 끝났다. 그것이 바로 자비다.”

여기서 그가 말한 ‘자비’란 죽음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자비는 그가 손을 뻗어 붙잡을 힘만 있었다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비는 아데이를 위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비는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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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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