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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40] AI 이후의 수학

2026-08-24 08:31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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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프라사스 Nikolas Prassas is a policy analyst at a central bank. 중앙은행 정책 분석가


지난해 10여 개 대학의 수학자들이 레이던에 모여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학문 분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논의했다. 그 회의의 결실이 바로 「인공지능과 수학에 관한 레이던 선언」이다. 이는 이 새로운 기술이 초래하는 위협과 이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신중하고 절제된 문체로 서술한 수십 개 문단의 문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이 선언에는 3,500명이 넘는 이들이 서명했다.

이 선언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AI를 둘러싼 열풍이 위험한 단순화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언문 작성자들은 과도한 낙관론과 과도한 공포 사이의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자 했다. 나 역시 그런 정신으로 이 선언문을 읽어 보려고 나름대로 힘썼다. 그러나 그들이 열거한 “잠재적 위협들”을 살펴보다 보니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만일 지옥의 최고사령부가 수학계의 몰락을 꾀하도록 어떤 ‘Screwtape(악마의 이름)’를 파견했다면, 그조차도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AI보다 더 완벽한 도구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이다.

목록의 첫 두 가지 위협을 보자. AI는 그럴듯하고 유창한 수학적 허튼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며, 자신이 인용하는 연구를 정확한 인간 저자에게 돌리는 데에는 놀라울 정도로 서툴다. “그럴듯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논증”과 검증되지 않은 인용문으로 가득 찬 논문들이 현재의 동료평가 체계에 충분히 많이 유입된다면, 그 체계는 곧 무너지거나 전통적인 엄밀성의 기준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출판된 논문들은 다시 다음 세대의 대규모 언어 모델을 훈련하는 자료의 일부가 될 것이다. 소수의 작은 오류들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적되어도 수학을 심각한 혼란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할 수 있다.

AI는 또한 수학 연구의 자율성을 침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같은 기술 숭배적 문화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흔히 “그 자체를 위해 장려”된다. 머지않아 수학자들은 관련 모델을 훈련하고, 호스팅하며, 사용권을 부여하는 기업들에 예속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은 학술 출판의 규범을 철저히 무시해 왔으며, 마케팅을 위해 연구 결과를 과장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 모든 것은 “제대로 된 평가”를 훼손한다.

실제로 연구 의제는 이미 자동화에 적합한 수학 분야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에르되시 문제(Erdős problems)’를 해결하는 AI의 능력을 둘러싼 열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르되시 문제란 헝가리 수학자 폴 에르되시가 제시한 수백 개의 수학적 문제들을 느슨하게 묶어 부르는 명칭이다. 언론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이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도 해결하는 데 성공하면 재빨리 보도해 왔다.

그러나 정작 에르되시 자신이 “마시멜로”와 “도토리”를 구별할 방법이 없다고 경고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말한 “마시멜로”란 ‘맛있기는 하지만’ 덧없이 사라지는 수학적 호기심의 대상을 뜻했고, “도토리”란 훗날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 문제를 뜻했다.

레이던 선언은 이 모든 문제를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제기하는 또 하나의 별도 위협, 곧 우리가 수학의 “지혜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이 표현은 엔니오 데 조르지가 1994년 레체대학교에서 한 강연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늘날 데 조르지는 타원형 방정식 해의 정칙성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특히 좀처럼 풀리지 않는 까다로운 정리 앞에서 막힐 때면 자리를 떠나 하느님께 기도하곤 했다.

그는 레체 강연 무렵 가진 한 인터뷰에서 이 ‘지혜적 가치’에 대해 가장 간결한 정의를 제시했다. 그것은 헝가리계 미국 이론물리학자 유진 위그너가 처음 제기한 오래된 문제인 “자연과학에서 수학이 보여 주는 불합리할 만큼 놀라운 효율성”에 관한 논의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에게 가장 시사적인 지표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 가운데 하나인 『잠언』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느 대목에서 지혜—수학보다 더 넓은 의미의 지혜—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분과 함께 있었으며, 이 지혜는 그것을 찾고 사랑하며 경외하는 인간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학은 보이는 것들에 대한 관찰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상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학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옥의 최고사령부가 수학자들 사이에 혼란을 뿌리고 싶어 할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수학자들은 인간 지혜의 한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 헨리 뉴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전통은 끊임없는 “정신의 확장”의 원천이 되어 왔다.

그리고 다른 지혜의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수학 역시 데 조르지가 “지혜의 덕”이라고 부른 덕목들의 함양에 의존하며, 동시에 그 덕목들을 길러 낸다. 여기에는 겸손, 희망, 그리고 친교가 포함된다.

마지막 덕목인 친교는 데 조르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지식의 나눔, 우정, 상호 이해를 위한 탐구”를 의미했으며, 이 모든 것은 수학 연구에 필수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잠언』에 나오는 지혜의 잔치를 떠올리게 하며, 또 하나의 위대한 지혜의 시편이라 할 수 있는 단테의 『향연(Convivio)』도 연상시킨다.

데 조르지는 같은 레체 강연에서 수학을 “문제를 밀어 넣기만 하면 즉시 해답이 나오는 작은 기계”처럼 취급할 때 수학의 지혜적 가치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연구를 연필과 종이로 수행했지만 기술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며, 컴퓨터가 새롭고 기묘한 수학을 만들어 낼 흥미로운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컴퓨터가 인간의 상상력을 대체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 영향은 치명적일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 세기의 또 다른 뛰어난 가톨릭 수학자인 마스턴 모스의 말을 빌리자면, 만일 수학 전체가 기계에 의해 그대로 복제될 수 있다면, 우리는 차라리 “다른, 그리고 더 참된 예술로 눈을 돌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레이던 선언의 서명자들이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길도 있을 것이다. 그 한 가지 잠재적 모델이 「세계인권선언」이다. 이 문서는 국제법의 세속적 언어로 작성되었지만, 데 조르지는 그럼에도 이를 “인간 정신이 이룩한 가장 고귀한 표현들”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그는 수학의 실천과 인권의 현실 사이에 깊은 조화가 있다고 믿었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수학은 인간이 “자신의 인격적 확신에 따라 자유롭게 지혜를 탐구할 수 있는” 곳에서 번성하며, 그러한 자유는 다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에 의존한다.

그러나 데 조르지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다고도 믿었다. 그는 지혜의 여러 갈래가 마침내 ‘ad immortalitatis regnum’, 곧 “불멸의 나라로” 수렴한다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에 틀림없이 동의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얼마 앞두고 이 점을 직접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평범한 연구 수학자라면 아마 놀랄 만큼, 그는 이를 일종의 거룩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부활에 대한 생각, 곧 생명이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짧은 세월의 궤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세상을 떠난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각은 내 삶의 근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심지어 내 연구의 근본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여정으로 봅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식을 온전히 사랑해야 하며, 이 사랑이 죽음 이후에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리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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