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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함경남도 여성 수백 명이 광산과 탄광, 농장, 건재생산기지 등에 ‘자원’했다고 선전하며 여성들의 노동력 동원을 또다시 ‘애국’과 ‘영예’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의 자유로운 직업 선택과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북한 사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대규모 ‘탄원’이 과연 개인의 자발적 선택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함경남도 여성들이 “사회주의건설의 영예로운 초소들에 용약 탄원하였다”며 금야군 여성들은 인흥광산으로, 함남지구탄전과 덕성군 여성들은 탄광과 갱목생산사업소로, 북청군과 단천시 여성들은 농장과 건재생산기지 등으로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의 표현만 보면 여성들이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앞다퉈 험지로 향하는 감동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말하는 ‘탄원’은 오랫동안 주민들을 광산·탄광·농촌·건설현장과 같은 기피 노동현장에 배치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정치적 선전 용어다.
특히 이번 보도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여성들이 배치되는 곳이다. 광산과 탄광, 갱목생산사업소, 농장, 건재생산기지 등 대부분이 노동 강도가 높고 작업환경이 열악한 곳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임금과 안전, 복지, 근로조건을 개선해 노동자를 확보해야 할 분야들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문제에 대한 설명 대신 ‘당의 믿음’, ‘공민적 본분’, ‘애국심’, ‘혁명적인 대중운동’ 같은 정치적 구호를 앞세웠다.
경제의 구조적 실패를 주민들의 희생으로 메우는 북한식 통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더구나 ‘여성근로자의 영예’를 강조하면서 여성들에게 국가 경제난의 부담을 떠넘기는 행태도 문제다.
북한 여성들은 이미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시장 활동과 가사노동, 각종 조직생활과 사회적 동원이라는 다중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여성 개인의 삶과 선택권을 논하기보다 다시 광산과 탄광, 농촌으로의 진출을 ‘영예’라고 선전하고 있다.
함흥대극장에서 별도의 축하모임까지 열었다는 사실 역시 북한식 노동 동원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 행사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당과 근로단체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결정관철의 전구마다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창조하라”고 주문하고, 진출자들은 다시 “당의 믿음”과 “로력적 성과”를 맹세했다.
개인의 직업 선택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실상 당 정책 수행을 다짐하는 정치적 충성 행사를 연상케 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광산과 탄광에서 일할 노동자가 부족하다면 안전시설과 임금, 작업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정상적인 해법이다. 농촌에 사람이 부족하다면 농업의 생산성과 생활환경부터 높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 실패의 원인을 제도와 정책에서 찾기보다 주민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희생을 ‘애국’, ‘영예’, ‘탄원’이라는 화려한 언어로 포장한다.
진정한 여성의 영예는 당이 지정한 ‘전구’에서 더 많은 노동을 바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삶과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으며,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국가의 강요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동의 존엄도 성립한다.
북한 당국이 정말 여성근로자의 영예를 말하고 싶다면 충성 맹세와 집단 동원부터 중단해야 한다. 주민의 희생을 선전하는 국가가 아니라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로 바뀌는 것, 그것이 북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진짜 ‘새로운 초소’일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