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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41] ‘연락 끊기’가 약속하는 거짓된 해방

2026-08-25 07:2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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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메링 Noelle Mering is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and author of the forthcoming No Contact: How a Seductive Ideology Broke Families and Friendships and How We Can Repair Them.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


열아홉 살 앨리스가 가족과 관계를 끊기 시작할 무렵,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히며 자신의 “found family, 새롭게 찾아 만든 가족”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부모인 그레그와 태미에게 이 표현은 낯설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낯설지 않았다.

앨리스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정치 문제에 강하게 몰두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차림도 거칠고 날카로운 분위기로 바꾸었으며,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쉽게 화를 내고 흥분했다. 가족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행동했다. 앨리스는 가족을 “유해한(toxic)” 사람들이며 “예수 광신자들”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부모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레그와 태미는 자신들이 설교조로 말하거나 문화전쟁에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여길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몇 달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분노 폭발과 관계 단절이 이어진 끝에, 앨리스는 가족과 완전히 연락을 끊기로 결정했다.

앨리스의 이야기는 내가 곧 출간할 책 ‘단절’에서 다루는 보다 광범위한 현상을 보여준다. 가족 간의 절연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로는, 특히 학대가 있는 경우에는 비극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정당화될 수도 있다. 건강한 면역체계가 그러하듯,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을 식별하고 배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증가하고 있는 ‘연락 끊기’ 현상은 오히려 신체의 방어체계가 자기 몸에 속한 것을 위협으로 오인하는 자가면역질환에 더 가깝다. 이 현상에 휩쓸린 사람들은 위험한 것과 단지 힘든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다. 그 결과 실제로는 자신에게 필수적인 것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동시에 치료사, 인플루언서, 온라인 포럼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확장되면서, 가족과의 절연은 ‘경계 설정’과 ‘자기 돌봄’을 위한 힘 있는 행동으로 새롭게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폐기되어야 할 “가족이라는 신화”란, 가족관계에는 특별한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지속적인 의무가 따른다는 믿음이다.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부모를 공경하여라”라는 계명은 이제 억압을 가리는 무화과 잎 역할을 하는 시대착오적인 관념으로 취급된다.

오늘날 가족 간의 절연은 상당수의 가정을 괴롭히고 있다. 코넬대학교 사회학자 칼 필레머의 미국 전국 단위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친족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으며, 이는 약 6,800만 명에 해당한다. 2024년 미국정신의학회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21%가 논쟁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가족 구성원과 관계를 끊은 적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레그와 태미가 자녀와 절연된 부모들을 위한 모임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른 부모들도 앨리스에게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언어로 비난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부모들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급작스러운 관계 붕괴를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유해한 사람”, “안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받았고, 관계가 끊겼으며, 결국에는 “새로 찾은 가족”이나 “선택한 가족”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가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친밀함에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으며, 오히려 매우 아름다운 면이 있다. 건강한 가족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관계는 생명을 구해 주는 것과도 같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 역시 친족 관계에 대해 확장된 이해를 갖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고, 혈연을 넘어서는 영적 가족으로 서로 결합된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과 자연적인 혈연관계를 서로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족을 해체하려는 이러한 기획에는 나름의 지적 계보가 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슈나이더는 1984년 저서 ‘친족 연구 비판’에서 친족관계를 보편적으로 혈통에 의해 정의해야 한다는 전제에 도전했다. 캐스 웨스턴의 영향력 있는 1991년 저서 ‘우리가 선택하는 가족들’은 이러한 비판을 게이와 레즈비언 공동체에 적용했다. 그는 생물학적이고 비자발적이며 역할과 의무가 부여되어 있는 전통적인 친족관계와, 친화성과 자율성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를 대조했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러한 구성주의적 논리를 한층 더 밀어붙였다. 그는 Undoing Gender에서 친족관계를 일종의 ‘행위’, 곧 그 의미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재협상하는 실천으로 묘사한다. 버틀러의 사상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영향력 있는 학술논문 「드래그 교육학」에 이르게 된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Drag Queen Story Hour(화려하게 분장한 드래그 퀸들이 공공 도서관이나 학교, 서점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르치는 아동 문해력 프로그램)’를 문화적 각본을 다시 쓰는 실천이자, “대안적인 친족관계 양식에 대한 예비적 입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연락 끊기’ 현상은 젠더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오늘날 가족들은 정치적 지지 관계, 투표 선택, 코로나19 시기의 갈등, 그 밖의 여러 이념적 차이로 인해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그러나 ‘선택한 가족’ 이론은 새로운 젠더 관념에도 스며 있는 하나의 전제를 유난히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구성’,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결된 ‘수행성’이라는 개념이다. 한때 주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현실들이 사실은 수행되고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족 역시 의지의 행위를 통해 만들어질 수도 있고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가족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것으로 이해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부모와 형제자매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 혼인은 선택으로 시작하지만, 일단 맺어지면 그 선택을 촉발했던 욕망보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의무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가족 안에는 자유와 필연, 선택과 주어짐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관은 이처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연락 끊기’를 둘러싼 논의에서 성인이 된 자녀들은 자주 이러한 논리를 부모에게 들이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 것은 부모이며, 아이는 이에 동의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 논리에 따르면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도덕적 의무는 언제나 한 방향, 곧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만 흐르며,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삶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되고, 의존은 권력의 불균형이 된다. 동의(consent)는 그것이 마땅히 적용되어야 할 도덕적 영역에서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 범위가 끝없이 확대되어 마침내 가장 근원적인 인간적 선까지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가족관계의 진정한 본성을 흐려 놓는다. 부모에게는 막중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의무는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죄책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의무는 오히려 자신에게 맡겨진 연약하면서도 귀중한 한 인간에 대한 감사와 경외에서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동시에 성숙한다는 것은 한때 우리를 지탱하기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부모가 완벽했는지, 혹은 부모 역할을 상대적으로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하기 이전부터 의미를 지니는 그 관계 자체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의무를 축소하는 데서 출발하는 가족 개념은 흔히 지속성을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과 연락을 끊은 뒤 이를 고통스럽게 깨닫는 이들도 있다. 친족들과 연락을 끊은 한 여성은 이렇게 썼다. “나에게는 ‘선택한 가족’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고 가족처럼 여기던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결국 자신은 언제나 친구들의 친가족 다음 순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그들을 가족으로 선택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코 당신을 가족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또 다른 여성은 서른네 살이 되었을 무렵, 이혼과 정신건강의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했던 가족 전체를 잃었다고 말했다.

“대체로 심각한 위기나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선택한 가족’을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어려운 순간에는 끝까지 함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안정함과 버려질 수 있다는 감각은 결국 이 운동이 자신이 만든 논리에 스스로 발목 잡혔다는 징표다. 오직 선택만으로 만들어진 가족은 언제나 미래의 또 다른 선택에 의해 해체될 가능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오직 선택만 있고 의무가 없는 관계는 불안정하다. 반대로 의무만 있고 선택이 없는 관계는 비인격적이다.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도전이자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다시 선택하고, 우리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충실함이 주는 안전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레그는 앨리스를 잃은 감정은 자신이 평생 겪어 본 그 어떤 경험과도 달랐다고 말했다.

“그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가족 간의 절연 속에서는 희망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다시 사라진다. 그러나 그 상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바로 그 이유가 또한 그 관계를 다른 어떤 관계와도 다르게 만든다.

아이는 처음에는 온전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하나의 책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수년에 걸친 희생 속에서 무언가가 형성된다. 그레그는 그것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아주 작은 실 하나하나로 내 마음을 너에게 묶어 왔습니다.”

그 관계는 거래적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훨씬 더 형이상학적인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실재가 있습니다. 나는 네 눈을 바라보아 왔고, 너도 내 눈을 바라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했다.

“삶이 우리를 서로에게 주었습니다.”

급진적 자율성이 약속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을 의지적으로 다시 ‘선택하지 않을(un-choose)’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의지의 행위도 함께한 그 세월을, 또는 그 관계의 실재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절연은 연락을 끊을 수는 있어도 친족관계 자체를 지울 수는 없다. 화해에 대한 희망은 어쩌면 이 둘의 차이를 다시 기억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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