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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대한민국 국회에서 또 하나의 ‘헌정사상 초유’가 기록됐다.
8월 26일 국회는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범여권 주도로 가결했다. 재석 159명 가운데 찬성 157표, 반대 1표, 무효 1표였다.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다만 이번 결의안 자체가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제명은 별도의 징계 절차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사태가 가볍지 않은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국회가 표현과 토론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이진숙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의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왜곡하거나 희생자를 모욕하는 행위라면 얼마든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본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까지 토론과 검증의 장으로 끌어내 반박하는 데 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런데 이제 국회에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의원의 제명까지 촉구하는 정치가 등장했다. 반론이 아니라 제명이고, 토론이 아니라 퇴출의 언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 명분으로 5·18 정신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5·18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을 때 시민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저항했던 역사다. 그렇다면 그 정신의 핵심에는 권력에 대한 감시, 표현의 자유, 정치적 다양성, 국가권력의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정치세력은 5·18을 끊임없이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5·18을 둘러싼 불편한 질문과 논쟁에는 정치적 제재의 칼을 들이댄다. 실제로 현 민주당 정부는 올해 5월에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재차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5·18 정신인가.
권력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던 민주화의 역사를 다른 의견을 배제하는 명분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5·18 정신의 계승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의 자기부정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은 언제나 비슷하다. 처음에는 상대의 발언을 문제 삼고, 그다음에는 토론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마침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정치의 장에서 제거하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언제나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붙는다.
권력이 스스로를 정의라고 믿기 시작할 때 권력은 괴물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 한마디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 다수 의석을 헌법 위에 놓으려는 정치, 자신들의 역사관과 다른 목소리를 곧바로 반민주·반헌법으로 규정하는 정치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권력도 영원하지 않다. 연극이 끝나면 모든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스스로 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티는 권력도 결국 국민의 심판 앞에서는 내려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에게는 총알보다 강력한 것이 있다. 바로 투표용지 한 장이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 역시 국민이 치르지만, 잘못된 권력을 바로잡을 힘도 국민에게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를 넘어선 기억이다. 누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했는지, 누가 다수의 힘으로 반대자를 침묵시키려 했는지, 누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했는지를 국민은 하나하나 기록해야 한다.
권력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른 목소리를 지우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봉쇄하고, 다수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면 국민은 언젠가 그들에게 되물을 것이다.
당신들이 그토록 헌법에 넣겠다고 외쳤던 5·18 정신이 정말 이것이었는가. 광란은 영원하지 않다. 권력도 영원하지 않다. 마지막에 무대에 남는 것은 정당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