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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43] 역대 최고의 영화?

2026-08-27 08:1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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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1966년은 영화의 위대한 해였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듬해 열린 제39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편은 모두 여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알피》(Alfie),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 《러시아인들이 온다! 러시아인들이 온다!》(The Russians Are Coming the Russians Are Coming), 《산 페블즈》(The Sand Pebbles), 그리고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가 그것이다.

그런데 1967년의 그 오스카 시상식은 오늘날 오스카의 밤을 지배하는 저속한 ‘워크(woke)’ 문화와는 광년만큼이나 동떨어진, 전혀 다른 행성에서 열린 행사처럼 느껴진다. 당시 시상식은 우아했고, 진행은 적절한 속도로 이루어졌으며, 연미복을 차려입은 밥 호프가 훌륭하게 사회를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드리 헵번이 작품상을 시상할 때 찾아왔다.

그것은 영화를 예술로 기념하는 할리우드의 연례 축제에서 극적인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헵번은 호프와 짧게 덕담을 주고받은 뒤, 후보작들과 제작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봉투를 받아 그 안의 카드를 읽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기라도 한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상작이《사계절의 사나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최근 로버트 볼트의 희곡을 프레드 진네만이 영화로 각색한 이 흡인력 넘치는 작품을 적어도 여섯 번째로 다시 보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계절의 사나이》는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작품이 아닐까? 모든 것이 정확히 제자리에 있는 듯하다.

볼트의 각본은 이야기의 흐름을 계속 앞으로 이끌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희곡 원작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도 잃지 않는다. 출연진 모두가 훌륭하다. 폴 스코필드의 토머스 모어를 시작으로, 웬디 힐러의 앨리스 모어, 로버트 쇼의 헨리 8세—후년에 돼지처럼 살찐 호색한이 되기 전, 젊고 영웅적인 르네상스 군주의 모습이다—오슨 웰스의 울지 추기경—국가 권력과의 동맹으로 불구가 된 교회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나이절 데이븐포트의 거칠고 현실적인 노퍽 공작, 리오 맥컨의 냉소적이고 도덕관념이 결여된 토머스 크롬웰, 그리고 지적 오만과 지나친 야망에 의해 타락하는 리처드 리치를 연기한 존 허트까지 이어진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앤 불린 역으로 보여주는 관능적인 82초짜리 카메오 출연은, 헨리 왕이 로마 교회와 결별하면서까지 선택했던 이 여인이 맞게 될 비참한 최후를 암시한다.

테드 무어의 촬영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충실하다. 나는 한때 런던탑에 있는 모어의 감방 창문 밖을 내다본 적이 있는데, 진네만과 그의 촬영감독이 템스강 제방의 그 풍경을 얼마나 영리하게 활용하여 토머스 경의 긴 수감 기간 동안 계절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표현했는지 새삼 놀랐다.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 역시 영화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지며, 작품에 진정한 르네상스 시대의 풍취를 더한다.

《사계절의 사나이》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볼트가 1962년 희곡 단행본 서문에서,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던 모어를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세속주의자 동료들에게 정당화하려 했던 방식에는 종종 이의를 제기해 왔다. 그 변론에서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였던 이 극작가는 토머스 모어를 일종의 실존주의적 영웅의 선구자로 묘사했다.

즉 모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금강석처럼 굳건한 감각”을 지키기 위해 죽은 인물이며, 헨리 왕의 위협으로 인해 “유연하고, 유머러스하며, 겸손하고, 세련되었던 이 사람이 금속처럼 굳어져, 절대적으로 원초적인 엄격함에 사로잡혔고”, 결국 “절벽보다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각본에서 볼트는 몇 가지 명백히 가톨릭적인 사실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모어 가족이 함께 기도했다는 사실, 신학적 지식을 갖춘 자문가였던 모어가 헨리 8세가 마르틴 루터에 맞서 칠성사를 옹호하는 책을 쓰도록 도와 왕이 ‘신앙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라는 칭호를 얻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 그리고 모어가 재판에서 교황직과 교황권이 하느님께서 정하신 제도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볼트가 그려낸 모어는 자신이 이렇게 죽는다고 고백한다.

“나는 왕의 충실한 신하로 죽지만, 그보다 먼저 하느님의 종으로 죽는다.”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그토록 기꺼이 나아가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서문에서 로버트 볼트는 알베르 카뮈에 대한 존경을 고백하는데, 나 역시 몇몇 점에서는 그 존경을 공유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카뮈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았다면, 그의 마지막 말이 모어의 말과 같았으리라고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볼트가 16세기의 자신의 주인공에게 교수대에서 그런 말을 하게 했다는 사실은, 결국 그 자신도 암묵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즉 모어는 “강철 같은 자아의식”을 지닌 훌륭한 실존주의자로서 달리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를 위하여 자신이 죽는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토머스 모어는 대단히 유능하고 양심적인 공직자였다. 그의 삶에서 이 측면은 《사계절의 사나이》에서는 다소 희미하게 처리되어 있다. 영화에서 우리는 모어가 잉글랜드의 대법관(Lord Chancellor)으로 임명되는 장면은 보지만, 그 고위직에서 실제로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모어의 모범을 더욱 부각할 필요가 있다. 공직이 너무나 자주 ‘퍼포먼스 예술’—혹은 저질 퍼포먼스—을 벌이는 무대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는 12월로 개봉 60주년을 맞는 《사계절의 사나이》는 2026년 현재 공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 관람 영화로 지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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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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