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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참으로 씁쓸한 장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두고 “태평양 지역 안보의 매우 큰 문제”라고 경고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나라가 오히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가 앞으로 직면할 위험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3만~5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군이 실제 전장에서 전투 경험을 쌓고 드론과 무인기 운용까지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특히 태평양 지역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북한군의 정확한 파병 규모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 국방정보본부는 지난 8월 북한이 2024년 10월 이후 러시아에 1만6천 명 이상을 파견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당시 추가 파병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식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시한 3만~5만 명이라는 수치는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숫자가 얼마냐는 것만 붙들고 있을 일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북한군이 현대전의 실전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반도 안보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전쟁은 가장 잔혹한 군사학교다. 훈련장에서 아무리 많은 연습을 해도 실제 전장의 전자전, 드론전, 포병전, 미사일 운용, 지휘·통신과 병참 경험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북한군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이러한 경험과 기술을 습득한다면 그들이 돌아갈 곳은 다름 아닌 한반도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에도 탄도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9월 12일 북한이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복수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역시 단순한 외교적 친선 수준을 넘어 군사·경제 협력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유럽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남의 전쟁이라고만 볼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발사되는 북한제 미사일은 북한 무기체계의 실전 시험장이 될 수 있고, 그곳에서 축적되는 북한군의 전투 경험은 언젠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위험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문제를 ‘태평양 안보’와 연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쟁 당사국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의 안보를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문제가 일상의 뉴스 정도로 소비된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안보 불감증은 없다.
안보는 전쟁이 시작된 뒤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배우고 있고, 어떤 무기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어떤 나라와 군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북한제 미사일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러시아의 드론·전자전·미사일 기술과 작전 경험이 북한으로 얼마나 이전되고 있는지를 대한민국은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대비태세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경고를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된다. 오늘 우크라이나에서 북한군이 배우는 전쟁이 내일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대한민국이 걱정해야 할 위험을 먼저 경고하고 있는 현실. 그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과연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그들만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안보는 다른 나라가 대신 걱정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