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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65] 가톨릭 지성 전통의 매력

2026-09-18 08:4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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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에이어 Carlos Eire is the T. Lawrason Riggs Professor of History and Religious Studies at Yale University. 예일대학교 역사학 및 종교학 석좌교수


2013년 가을 학기, 나는 이곳 예일대학교에서 새로운 강좌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좌명은 「가톨릭 지성 전통(The Catholic Intellectual Tradition)」이었다. 이 강좌에는 이전의 강의 실적도 없었고, 따라서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전혀 없었지만, 약 스무 명의 학생이 용감하게도 수강을 신청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수강생은 85명으로 늘어났으며, 역사학과가 개설한 학부 강좌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강좌가 되었다. 그렇다. 역사학과 강좌다.

이처럼 놀라운 수강 현황은 이 강좌의 조교 가운데 한 명인 세르히오 인판테가 『슬레이트(Slate)』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알려졌다. 글의 제목은 「나는 예일에서 가르친다. 내 주변에는 Z세대 가톨릭 신자들이 가득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였다. 부제는 더욱 단호하게 선언한다. “대학들은 점점 더 종교적으로 변해가는 학생들과 연결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글은 뉴헤이븐 도심 바깥의 세상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3년 이래로 이 강좌는 매우 높은 동기를 지닌 학생들을 끌어왔다. 이들은 이전에는 자신들에게 가려져 있던 사상의 한 차원을 탐구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읽고 토론하는 문헌들이 그들의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가톨릭 학교를 다닌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연하게도 개신교 신자들, 비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아무런 종교적 소속이 없는 이들에게도 해당된다.

학생들의 배경이 어떠하든 이 강좌에서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독서에 몰두하는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늘 상당수 학생들에게 이 독서가 단순한 과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왔다. 물론 다른 강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50년이 넘도록 가르쳐왔고, 예전에 모든 학생이 수도자나 신학생이었던 강좌들을 포함해서도, 내가 가르친 어떤 다른 강좌에서도 이와 같은 집중력과 열정을 느끼거나 본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강좌는 내 삶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 가운데 하나다. 나는 이 강좌가 내게 “일어났다”고 표현한다. 그 창설이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라 협력 과정속에서 뜻밖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일에서 나와 한패가 된 사람은 철학자인 동료 제프 브렌젤이었다. 불을 붙인 부싯돌과 불꽃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모든 것은 그가 먼저 시작한 대화에서 출발했다. 어떤 강좌가 예일 학생들에게 가톨릭 사상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눈 끝에 우리 두 사람과, 나중에 합류한 세 번째 동료인 문학자 주세페 마초타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학생들을 1차 문헌의 깊이 있는 독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위대한 지성들이 직접 쓴 진짜 글들을 읽게 한 뒤, 학생들에게 그것들을 분석하고 서로 대화시키며, 동시에 오늘날의 문제들과도 대화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학생들에게 가톨릭 사상의 다양한 흐름을 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다시 말해 신학자, 교회 인사, 철학자, 신비가, 시인, 소설가, 역사가, 예술가, 사회·정치 활동가, 그리고 어떤 범주에도 쉽게 넣기 어려운 저자들의 글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 강좌가 학생들에게 가톨릭 사상이 참으로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깨닫게 하기를 바랐다. 소문자 ‘catholic’이 지닌 모든 의미에서 말이다.

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강좌명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하지만 광고 전문가를 고용할 예산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가톨릭 전통(The Catholic Tra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포괄적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식 강좌 목록이 게시되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강좌명 중간, “Catholic”과 “Tradition” 사이에 “Intellectual”, 즉 “지성”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단어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섭리적인 일로 받아들였으며, 강좌명에 그처럼 명료하고 진실한 단어가 들어간 것을 매우 훌륭한 일,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한 단어가 추가됨으로써 강좌명은 즉시, 우리 세속 시대가 즐겨 부정하거나 조롱하려 드는 어떤 사실을 긍정적으로 선언하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 문화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조차 가톨릭적인 것들을 둘러싼 오래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강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동료는 이렇게 물었다.

“가톨릭 지성 전통이라고요? 그건 형용모순 아닌가요?” 몇 주 뒤에는 또 다른 당혹스러워하던 동료가 물었다.

“왜 그런 강좌를 가르치세요? 당신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잖아요.”

내가 실제로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에는 즉시 놀라움이 떠올랐다. 잠시 침묵한 뒤 그는 말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관용적인데요!”

이 강좌에는 온갖 종류의 탐구자들이 모여든다. 매우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온 학생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말하기 어렵다. 지난 13년 동안 이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의 수만큼이나 서로 다른 좋은 것들을 찾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년 수강생 가운데 상당한 핵심 집단이 가톨릭 신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숫자나 비율은 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성장 배경이나 신앙 정체성에 관해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없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종교적인지 아닌지를 물어본 적도 없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며, 그런 문제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정체성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읽을지, 강의에서 무엇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을지를, 혹은 매주 이루어지는 토론 시간에 무엇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을지를 결코 좌우해서는 안 된다.

가끔 학생들이 아무런 질문을 받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 혹은 종교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그들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이 강좌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체성이 강경한 무신론자에서부터 자신이 환시를 본다고 말하는 신비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다는 것이다.

그 두 극단 사이에는 세계의 많은 종교들이 자리한다. 주요 종교들은 물론 소수 종교도 있다. 오컬트 신봉자들도 있고, 환각제를 통해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대담한 탐구자들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읽는가?

모든 문헌은 그 중요성뿐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선택된다. 매주 빠짐없이 학생들은 역설에 이어 또 다른 역설을 만난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사상의 본질이며, 우리가 살펴보는 모든 문헌을 관통하는 붉은 실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균형을 위해 이단자들이 쓴 글들도 읽는다. 선명한 대조는 가톨릭 사상의 핵심 요소들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준다. 사실 나는 한 번은 다른 대학에서 그리스도교 사상사 개론 강좌를 개설하면서, 이전에 그 강좌에 반대했던 학장의 눈을 피해 강좌명을 「이단의 역사(History of Heresy)」로 바꾸어 통과시킨 적도 있다.

나는 매 학기 첫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가톨릭 사상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존재에 관한 가장 깊고 가장 풀기 어려운 질문들, 특히 죽음과 악의 존재에 관해 2천 년 동안 계속해 온 사유.”

이 짧은 설명은 이 전통이 지닌 보편적 매력을 잘 보여준다. 그런 다음 나는 무엇이 이 전통을 특별히 가톨릭적인 것으로 만드는지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 모든 사유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분께 가장 충실하게 머무는 방법과 2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신앙 공동체에 가장 충실하게 머무는 방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가톨릭성(catholicity), 곧 보편성이 단지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가톨릭 그리스도교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그리고 분리할 수 없게, 시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곧 살아 있는 이들뿐 아니라 죽은 이들까지도 포함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는 이 마지막 설명은 언제나 학생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듯하다. 반세기 동안 가르치다 보면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그렇다. 나는 세르히오 인판테의 주장에 동의한다. Z세대 학생들 가운데 이 강좌가 제공하는 것을 갈망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대다수 학생이 그렇다는 뜻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사립대학과 공립대학을 막론하고 고등교육 기관에는 여전히 이런 강좌를 매우 기쁘게 수강할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소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탐구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강좌를 개설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대거 찾아올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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