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공립학교 학생들, 성경 읽기 의무화.” 지난 6월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 제목은 이렇게 경고했다.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주내 초·중·고교의 필수 독서 목록을 막 승인한 참이었다. 현재 형태의 목록은 각 학년에 성경 구절을 한두 대목씩 지정하고 있다. 발췌문은 짧고 대체로 개별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담과 하와,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 다니엘과 사자 굴 등이 그 예다. 이 대목들은 12학년의 『햄릿』과 『오만과 편견』, 10학년의 『줄리어스 시저』와 『신곡』의 「지옥편」, 7학년의 『안네의 일기』, 5학년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처럼 더 긴 작품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성경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볼티모어 선』까지, CNN과 CBS에서 BBC와 『가디언』까지 보도가 이어졌다.
위원회는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의 사회과 교육을 위한 새로운 기본 지침도 승인했다. 140쪽 분량의 이 문서는 건국 문서, 자유기업 제도, 텍사스와 미국의 역사 같은 필수 학습 주제 가운데 “히브리 성경(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포함한 종교 문헌”을 열거하고 있다. 이 지침은 무엇을 언제 가르칠 것인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3학년 학생들은 아브라함과 모세에 관해 배우고, 4학년 학생들은 “가톨릭교회와 교황을 중세 유럽의 중요한 제도로 파악”하게 된다. 심리학 과목에서는 “히브리 성경을 포함한 고대 경전의 영혼 개념”을 살펴본다.
이 주제들은 다른 수많은 역사적 사안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을 밝혀 두어야겠다. 모세와 아브라함에 관한 지침은 해당 지역에 미친 메소아메리카의 영향에 관한 지침 뒤에 나오며, 그다음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관한 더 긴 항목들이 이어진다. 심리학 과목에서 학생들은 성경뿐 아니라 이집트의 『사자의 서』, 베다, 불교에서도 영혼 개념을 공부한다.
그런데도 뉴스 보도는 불안감을 조장했다. PBS는 텍사스의 교육과정을 “미국 교실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밀어 넣으려는, 갈수록 확대되는 보수 진영의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불렀다. 뉴스네이션의 기사 제목은 이 교육과정을 주일학교 수업처럼 들리게 했다. “텍사스, 초·중·고교의 성경 수업 의무화 승인.” 『휴스턴 크로니클』은 위원회가 “550만 명에 이르는 모든 학생의 교실 수업에 그리스도교를 확고히 자리 잡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msn.com의 한 기사는 위원회가 청취한 공개 진술이 “학교에서 그리스도교의 비중을 늘리려는 시도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의 가치관에서 그리스도교가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해 온 보수주의자들이 있는 텍사스에서, 정체성과 존립에 관한 논쟁을 이어 갔다”고 보도했다. 미국역사학회는 성명을 내어 위원회에 인종차별적·성차별적·유럽중심적 태도와 이념적 왜곡이 있다고 비난하고, “건국 이래 미국을 형성해 온 신앙과 교파와 전통의 다양성”을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진영의 불안은 예상할 만했다. 그것은 1976년 지미 카터가 당내 경선에서 선두로 나서며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선언했을 때, 2001년 조지 W. 부시의 당선으로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행정부를 장악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을 때, 2024년 루이지애나주 의원들이 모든 공립학교와 공립대학교의 교실에 십계명을 게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그리고 성경에 대한 믿음이 공적 사안에 등장했던 수없이 많은 다른 경우에 제기된 우려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텍사스 교육과정의 변화는 세속적 논리로도 옹호할 수 있다. 이는 E. D. 허시가 오래전부터 제시해 온 “문화적 문해력”에 관한 주장이다. 『뉴욕 타임스』의 제임스 트라우브와 『애틀랜틱』의 애덤 커시는 텍사스 교육과정에 성경이 포함되는 것을 다소 뜻밖에도 옹호하면서, 둘 다 허시의 논리를 끌어왔다. 내가 진보 성향 매체에서 본 긍정적 분석은 이 두 사람의 글뿐이다.
허시는 1987년 베스트셀러 『문화적 문해력』을 시작으로, 미국인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높이려면 학교에서 사실과 관념, 신화, 그 밖의 여러 “배경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 기고문에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독자가 그 암시를 알아듣지 못하면 이해도가 떨어진다. 이런 언급은 표준화 시험의 지문에 흔히 등장한다. 대학 1학년의 인문학·사회과학 강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이미 이를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시는 우리 사회와 같은 지식경제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하므로 저학년 때 가르쳐야 할 항목들을 목록으로 정리했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 과학적 사실, 군사 지도자, 스포츠 인물, 관용적 표현, 영화, 유적지 등이 그것이다. 성경은 종교뿐 아니라 미국의 역사, 시민교육, 법학, 정치, 연설, 문학, 예술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으므로, 구약성경에서만 이사야, 예레미야, 욥, 솔로몬을 비롯한 수십 개의 성경 관련 용어가 목록에 들어갔다. 뒤이어 나온 문화적 문해력 “사전”들에서 허시와 공동 편집자들은 항목들을 자연과학과 수학, 세계지리 등 주제별로 묶었고, 성경에는 별도의 한 장을 할애했다.
따라서 문화적 문해력은 정교분리 논쟁을 피하면서도 성경 읽기의 의무화를 옹호할 근거를 제공한다. 다른 신앙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다.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를 갖추려면 성경이 필요하다. 그뿐이다. 두 학생이 주립대학교에 진학해 필수 시민교육 과목을 수강한다고 하자. 이 과목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 네 편이 포함되어 있다. 고등학교에서 성경을 읽은 한 학생은 “갈라진 집” 같은 표현에 담긴 암시를 알아차린다. 성경을 한마디도 읽지 않은 다른 학생은 링컨의 수많은 암시를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친다. 과제물의 성적이 매겨질 때 그 차이가 드러난다. 두 번째 학생에게 성경을 전혀 가르치지 않은 고등학교는 그 학생에 대한 교육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교육학적 근거다.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실용적이다. 5학년에서 읽는 불타는 떨기나무에 관한 짧은 대목은 유일하신 참하느님의 중대한 현현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서 깊은 이야기이며, 문학으로서의 성경이고, 배경지식의 한 요소이며,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도구다. 교리를 주입하거나 개종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학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은 셰익스피어, 남북전쟁, 근대 과학의 등장과 함께 자리를 차지한다. 허시의 설명에 따르면,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성경을 포함하는 것은 허용될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두 학생의 사례가 보여 주듯, 학교는 성경을 배제함으로써 교육적 책무를 소홀히 해 왔다.
종교가 배제된 공론장의 현실은 분명 이러한 자유주의적 정당화를 요구한다. 텍사스 교육과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피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역사를 희석하는 일을 중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 국가로 세워졌으며, 텍사스는 그리스도교 주입니다.” 이는 댈러스 서쪽의 한 마을에서 활동하는 침례교 목사 브랜던 홀이 한 말이다.
그는 2024년 텍사스주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독서 목록이 승인되기 며칠 전에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많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에게 홀의 발언은 무모하다. 굳이 벌일 필요가 없는 문화전쟁, 혹은 종교전쟁에서 정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기 평가 점수는 떨어지고, 아이들은 글을 쓰지 못하며, 미국사에 대한 지식은 희미하고, 교육과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홀은 교육계의 주류 인사들을 경악하게 할 수밖에 없는 종교적 처방으로 응답한다. 성경 읽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교육계의 많은 개혁가들도 그의 발언에는 움찔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내게는 홀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리스도교적 성격을 내세운 것이 협소한 교육학적 근거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홀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선언한다. 성경은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은 결코 여러 과목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자리할 수 없다. 교사가 성경을 아무리 길들이려 해도, 계몽주의 회의론자나 비교종교학 교수처럼 성경을 다루어도, 성경은 그것을 펼치는 모든 학생을 향한 부름이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강력한 함의를 지닌 텍스트다. 좌파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옳다.
우리는 이번 개편에 실제로 무엇이 걸려 있는지 인정해야 한다. 그 결과는 문화적 문해력과 대학 학업 준비를 넘어설 것이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성경을 읽는다면, 학교는 사실상 미국의 종교적 핵심을 인정한 셈이다. 진보 진영의 비판자들도 분명 이를 알고 있다. 홀은 세속적 진보주의자들이 억누르고 싶어 하는 질문을 제기하도록 강제한다. 미국의 건국, 두 차례의 대각성 운동, 노예제 폐지와 민권운동, 호손과 멜빌과 스토의 저술, 진보주의 시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 그리고 그 밖의 미국의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산물은 성경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 답이 “매우 밀접하다”라면, 그리고 명백히 그러하다면, 교육과정에 성경을 포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청교도들의 탈출기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적용한 방식, 곧 박해를 피해 도망치고 위험한 물을 건너 광야에 도착한 과정을 살펴보고, 『풀잎』의 운율에서 구약성경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부커 T. 워싱턴이 매일 아침 성경 읽기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1950년대의 한 가톨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시청자 3천만 명을 모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면, 그 종교적 뿌리는 분명해질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풀턴 쉰이 진행한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였다. 진보 성향 교육자에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타락과 착한 사마리아인, 예수님의 공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학생들에게 더 알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가 미국이라는 실험에 본질적이라면,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에는 그 신앙에 대한 공부가 포함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교육 이념은 그리스도교의 배제를 수반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사실에 호소하여 교육과정에 성경 관련 내용을 포함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이를 직설적으로 말해야 한다. 1933년 T. S. 엘리엇은 「현대 교육과 고전」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는 그 강연에서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숙고하며 “대학들은 세속화의 길로 너무 멀리 가 버렸다”고 개탄한다.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주된 목적이 “더 많은 돈,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큰 권력, 또는 더 나은 사회적 지위”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쇠락 속에서 어떻게 고전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엘리엇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상은 그리스도교 문명이 존속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독자들뿐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존속하지 못한다면,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헌들이 에트루리아어 문헌들보다 더 알려지지 않고 더 잊힌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미국의 교실에서 배제된다면 시민교육이라는 기획 전체가 우리의 축복 속에서 무너져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과 우리나라가 함께 이어져 왔고, 처음부터 그러했으며, 따라서 문학·역사·시민교육·미술 수업에서도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강의계획서에서 성경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미국을 참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