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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확성기 설치 모습 - 자료사진 |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주민들은 생업과 일상의 불안을 먼저 감당한다. 주민 안전과 재산권을 보호하고 지역경제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그 책무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강원·경기·인천의 10개 접경지역 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합리적 조치를 요구하면서도, 확성기 재개 등 긴장을 높일 수 있는 조치의 철회를 촉구했다. 주민들의 불안을 대변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북한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주민 안전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부족하다.
제공된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번 폭발의 원인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최종적인 책임 판단은 객관적인 조사 결과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책임이 확인될 경우에도 대응을 자제하라는 요구부터 앞세운다면, 도발의 책임을 묻기도 전에 대응 수단을 스스로 내려놓는 셈이다.
긴장을 일으킨 행위와 그에 대한 대응을 같은 선상에 놓아서도 안 된다. 북한의 도발은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이며, 대한민국의 대응은 그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대응 과정에서 발생할 위험을 면밀히 따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응 자체를 긴장의 주범처럼 취급하면, 북한은 주민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안보상 제약과 생활의 불편을 감내해 왔다. 이에 대한 지원과 보상은 정당하며, 앞으로도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다만 그러한 지원의 근거를 이루는 안보 현실은 인정하면서, 그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조치는 일률적으로 막으려 한다면 정책적 모순을 피하기 어렵다. 지원을 받을 권리를 이유로 주민에게 침묵을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국가의 대응 능력을 무력화해서도 안 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효과와 위험, 다른 대응 수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수단을 배제하자는 주장에 상응하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확성기를 재개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북한의 도발 비용을 높이고 재발을 막을 것인가. 협의회가 요구한 ‘근본적인 평화안정 대책’ 역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자체와의 사전 협의는 주민 대피, 경보 전달, 생업 피해 보전 등 구체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국가 안보 조치를 사실상 허가하거나 금지하는 절차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응의 실효성과 주민 보호를 함께 높이는 데 책임을 모아야 한다.
접경지의 상황이 달라졌다면 평화를 지키는 방식도 현실에 맞게 점검해야 한다. 북한의 눈치를 살피고 자극을 피하는 것만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상대가 위협할수록 우리가 물러선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 위협을 반복할 유인만 키울 수 있다.
주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은 옳다. 그렇기에 당장의 긴장을 낮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음 도발을 막을 방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접경지역 단체장들은 정부의 대응을 막는 목소리와 함께 북한의 도발 중단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주민을 지키겠다면 대한민국의 손발을 묶을 것이 아니라, 북한이 도발의 대가를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