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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인사말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국민은 다시 묻게 된다. 이런 국회, 과연 필요한가. 의견이 다르다고 고함을 지르고, 상대를 모욕하고, 발언권을 둘러싸고 거친 언쟁을 벌이는 모습에서 국민의 대표다운 책임감은 찾기 어려웠다. 법과 정의를 논해야 할 자리가 국민에게 분노와 수치심을 안겼다.
지난 6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는 여야의 고성과 감정적인 충돌이 이어졌고, 발언권 정지에 대한 항의는 정회 뒤 복도에서까지 계속됐다. 민주당 소속 위원장의 회의 진행을 둘러싼 공방도 격해졌다. 국정을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언행부터 돌아봐야 하는 장면이었다.
법사위는 법률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하고 사법행정과 법 집행을 감시하는 중요한 상임위원회다. 그런 자리일수록 절차를 존중하고, 사실을 따지고, 상대의 답변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목소리의 크기로 논리를 대신하고 모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면, 법사위라는 이름부터 부끄러워진다.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토론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해서야 무슨 권위로 국가기관을 질책하겠는가.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법사위 운영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으로서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위원장의 권한은 공정한 토론을 보장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다. 자기편의 거친 언행에는 관대하고 상대편의 항의에는 엄격하다는 불신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회의 질서를 세우려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의석이 많다는 사실은 상대를 함부로 대할 자격증이 아니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과 같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더욱 엄중하게 묻고 싶다. 수사와 법 집행을 담당했던 경력은 어디로 갔는가. 증거와 논리, 적법한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정치에 들어와 상대를 몰아붙이고 진영의 감정에 편승한다면, 그 경력은 자랑이 될 수 없다. 법률 지식이 많다는 것과 법치의 정신을 갖췄다는 것은 별개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법률가의 냉철함이지,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정치적 독선이 아니다.
이들의 정치적 행태를 검찰 전체의 문제와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 집행의 일선에 있었던 인물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국민으로 하여금 그들이 과거 권한을 행사했던 방식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상대의 말을 들을 줄 아는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도 받아들이는가. 자기편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검찰개혁과 사법정의를 외친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세계와 경쟁하는 산업을 일으켰고, 국민은 각자의 일터에서 치열하게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만 유독 고성과 모욕, 편 가르기에 머물러 있다. ‘경제는 1류인데 정치는 5류’라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은 의원들의 분풀이를 구경하려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법을 제대로 만들고,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을 맡겼다.
국회를 보고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겠다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경고다. 잘못된 언행에는 공개적인 사과가 따라야 하고, 반복되는 모욕과 회의 방해에는 실질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당도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감싸기를 멈춰야 한다. 막말로 주목받은 사람을 공천으로 보상하면서 국회의 품격을 말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상식적인 국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만들 수 있다. 다만 국민의 분노를 선거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하고, 정당은 충성심보다 자질과 책임을 앞세워야 한다. 국회가 필요한 이유는 국민의 갈등을 조정하고 권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팽개친 채 갈등을 증폭시키고 특권만 누린다면, 국민이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의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상대 정당의 고함이 아니다. “당신들이 대체 왜 필요한가”라는 국민의 질문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