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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284] 엡스타인의 폭로

2026-03-21 08:09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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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 레이보비츠 Liel Leibovitz is editor at large for Tablet Magazine and senior research fellow at the Hudson Institute. 허드슨 연구소 선임 연구원


엡스타인 파일은 단순한 추잡한 관심거리나 끝없는 타블로이드식 소비거리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세기 이상 우리가 목격한 가장 중요한 폭로일지도 모른다. 그 내용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가치로 여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경우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를 깊이 드러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파일들은 세 가지 거대한 실패를 드러내며, 각각은 우리가 오래 숙고해야 할 경고의 이야기이다.

첫째,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우리는 워싱턴을 규탄해야 한다. 사소한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파일 공개에 동의함으로써, 연방 정부는 사생활 보호에 관한 200년에 걸친 정교한 입법 체계를 아무렇지 않게 폐기해 버렸다.

예를 들어 멜린다 게이츠의 입장이 되어 보라. 당신이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전 세계가 이제 당신의 전 남편이 러시아 여성들과의 부도덕한 관계로 얻은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당신에게 몰래 약물을 투여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아침 커피를 마신다고 상상해 보라.

1890년, 루이스 브랜다이스와 새뮤얼 워런은 바로 이러한 노골적인 사생활 침해가 초래하는 심각한 해악을 경고한 바 있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음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적 관계의 세부 사항들이 일간지 지면에 널리 퍼진다.”

나태한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신문 지면은 온통 쓸데없는 소문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가정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에 따라 삶의 강도와 복잡성은 인간에게 세상으로부터 일정한 후퇴를 필요로 하게 하였고, 문화의 세련된 영향 아래 인간은 더욱 공적 노출에 민감해져 고독과 사생활이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기업 활동과 발명은 사생활 침해를 통해 인간에게 단순한 육체적 상해보다 훨씬 더 큰 정신적 고통과 고뇌를 안겨주었다.

우리 정부는 시민과 그 고유한 권익을 지키는 현명한 수호자가 되기는커녕, 포르노 제작자와 반(半)포르노 제작자라 할 수 있는 언론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추잡한 자료를 제공하고 이를 유통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워싱턴은 훨씬 더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파일을 공개함으로써 정부는—비록 암묵적일지라도—더 이상 법치주의에 진지한 관심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러시아 스캔들(Russiagate)’과 같은 사건들 이전에는, 미국인들은 적어도 일부 연방 기관이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신중하게 수사를 수행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여겨졌다. 책임 있는 행정부였다면 이 기회를 통해 법치주의를 회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정부는 숙련된 전문가들이 자료를 분석하여 실질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절차를 버리고, 대중을 판사이자 배심원이며 집행자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수치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이메일을 공개하여 모든 사람이 보게 만든 권력자들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 파일들은 적을 공격할 수단을 찾기 위한 광란 속에서 뒤져졌다. 정부가 우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적 상태로 끌어들였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사계절의 사람(A Man for All Seasons)』 속의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변호사 윌리엄 로퍼가 성 토마스 모어와 맞서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악마에게도 법의 혜택을 주겠다는 말입니까?”라는 로퍼의 질문에, 모어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악마를 잡기 위해 법을 모두 베어 넘길 것인가?” 로퍼는 주저하지 않고 외친다. “그렇다면 나는 영국의 모든 법을 베어버리겠소!”

그러나 모어가 마지막 말을 남긴다. “모든 법이 무너지고 악마가 당신을 향해 돌아설 때, 어디에 숨겠는가? 이 나라는 해안에서 해안까지 인간의 법으로 촘촘히 세워져 있다—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인간의 법으로. 그 법을 모두 베어버린다면, 당신은 그때 불어올 바람 속에서 과연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나는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악마에게 법의 보호를 주겠다.”

현실이든 상상이든 악마와 싸우겠다는 조급함 속에서, 연방 정부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에 사생활 보호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엡스타인 파일의 공개가 정부의 구조적 실패를 드러냈다면, 그 내용은 또 다른 끔찍한 진실—우리 시대의 자칭 지적·도덕적 엘리트들의 윤리적 나약함—을 보여준다. 이 자료를 읽으며 우리는 범죄의 증거라기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영혼을 잃은 존재가 되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깊은 사상가’로 알려진 디팍 초프라를 보자. 그는 노스웨스턴, 컬럼비아, 하버드 등에서 강의 기회를 얻고 수백만 달러의 책 판매로 보상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엡스타인 파일은 그가 사적인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은 하나의 구성물이다. 귀여운 여자들은 현실이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엡스타인에게 “여자들을 데려오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초프라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 공허하고 타락한 삶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천박하고 유치한 대화를 읽고 나면, 왜 일흔이 넘은 그가 여전히 육체적 쾌락만을 쫓는 미성숙한 존재로 남아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일 전반에서 우리는 성숙이라는 위대한 교사가 권력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음을 본다. 그들은 자원은 넘치지만, 가정과 신앙 공동체, 그리고 공동선과의 깊은 결속은 결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엡스타인 파일이 드러내는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W. H. 오든이 지적했듯, 고대 그리스는 필연의 비극을, 그리스도교는 가능성의 비극을 제시했다. 즉 “다르게 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비탄이다. 이 파일을 읽으며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만약 권력자들이 더 높은 소명—하느님의 뜻에 따른 삶—을 따르거나, 최소한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는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상황은 더 나쁘다. 권력자의 타락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실제 범죄가 입증되기도 전에 처벌을 요구하는 도덕적 공황이다.

영국에서 앤드루 왕자가 체포되자, 좌우를 막론한 미국 논평가들은 “적어도 영국은 유죄자를 처벌하고 있다”고 외쳤다. 그러나 군중은 사실 여부보다 분노를 우선시한다. 이제는 엡스타인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처벌을 요구하는 히스테리가 확산되고 있다.

버크는 혁명 정신이 “삶의 품위 있는 장막을 찢어버린다”고 탄식했다. 도덕적 공황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죄는 처벌받아야 하고, 도덕적 잘못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법과 불쾌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한 연관성만으로 공범으로 취급하는 사회는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공황은 종종 사회 규범으로 굳어져,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키고, 자비와 신중함을 강조하는 신앙의 전통 대신 잔혹함을 낳는다. 우리는 레위기에서 주어진 ‘악한 혀’에 대한 금지—즉,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수치와 해악을 불필요하게 드러내지 말라는 계명—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엡스타인 파일을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더 선하고 덕성 있는 세대를 양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부와 성공의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선(善)을 추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저급한 욕망을 미화해 온 수십 년의 문화가 제프리 엡스타인을 낳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앞으로 권력을 쥘 사람들이 더 순수한 인간적·도덕적 기반 위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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