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Mirabelli v. Bonta’ 사건에 개입하여, 학교 직원들이 아동의 성별 전환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도록 요구하는 캘리포니아 정책의 시행을 차단한 하급심의 가처분 결정을 복원하였다.
이 판결은 미국 헌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온 한 원칙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즉,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외부의 성인이나 제도적 개입보다 우선하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깊은 뿌리를 지닌다. 한 세기 전, 연방대법원은 ‘Meyer v. Nebraska(1923)’ 판결에서 부모가 자녀의 교육과 양육을 지도할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였다. 이어 ‘Pierce v. Society of Sisters(1925)’에서는 “아이는 국가의 단순한 산물이 아니다”라고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Troxel v. Granville(2000)’에서도 부모의 권위를 기본적 자유권으로 인정하였다. 이 판례들은 모두 동일한 전제를 공유한다. 즉, 국가는 부모-자녀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인정하고 보호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이러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미국의 가족법은 정작 그 권리가 보호하려던 관계 자체를 지워가고 있다.
부모 권리의 교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 기초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부모는 자녀를 가장 잘 보호하고,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자녀의 미래와 복지에 가장 큰 책임과 관심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러한 헌신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생물학적 부모는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녀를 보호하고, 희생하며, 수십 년에 걸쳐 책임을 진다.
어떤 가족 구조도 학대의 부재를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지만, 통계적으로 혼인한 생물학적 부모로 이루어진 가정이 가장 안전하다. 법은 오랫동안 이러한 자연적 유대가 다른 성인들이 대체하기 어려운 수준의 헌신과 보호를 낳는다는 점을 인정해 왔다.
교사, 상담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은 아동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가 아니다. 그들은 부모 권위를 지탱하는 평생의 유대와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법은 전통적으로 외부인이 자녀의 양육을 주도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신중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기본 전제는 자녀의 성장과 형성은 제도가 아니라 부모가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부모가 부재한 경우, 법 체계는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대안을 찾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입양이었다. 그러나 입양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엄격한 심사, 가정 조사, 신원 조회, 그리고 사법적 감독이 요구되었다. 법원은 입양 부모가 생물학적 부모가 제공했을 법한 안정성과 보호를 동일하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의 부모성(parentage) 법은 점점 더 생물학이나 입양이 아니라 ‘성인의 의도’에 기반하여 부모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2017년 개정된 ‘통일 부모법(Uniform Parentage Ac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보조생식에 동의하고, 그로 인해 태어나는 아동의 부모가 될 의도를 가진 개인은 그 아동의 부모이다.”
이러한 변화는 겉보기에는 무해해 보일 수 있으나, 미국 법이 전통적으로 부모성을 인정해 온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을 의미한다. 이 체계 아래에서는 부모성이 사전에 표현된 의도—종종 의료적 절차나 계약적 합의—를 통해 확립될 수 있다. 보조생식, 기증된 생식세포, 대리모 계약, 출생 전 부모 지정 명령 등이 모두 이 체계 안에서 작동한다.
실제로 이 체계는 생물학적 부모를 법적으로 배제하고, 혈연과 무관한 성인을 처음부터 부모로 지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통일 부모법은 입양 과정에서 요구되던 보호 장치를 의도적으로 우회한다. 그 결과, 부모 권리 교리가 본래 보호하려 했던 생물학적 관계 자체를 단절할 수 있는 법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가는 단순히 부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지정한다. 부모성은 법이 관찰하는 현실이 아니라, 법이 부여하는 지위가 된다.
현재 약 12개 주가 혈연과 무관한 성인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법을 채택하였다. 그 모든 경우에 공통된 원리는 동일하다. 즉, 생물학적 관계가 없어도 성인의 의도가 법적 부모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 개념의 변화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2015년 ‘Obergefell v. Hodges’ 판결—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도록 한 판결—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이 판결은 혼인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 함의는 자연스럽게 부모성으로 확장되었다. 혼인한 부부 간의 평등을 보장하려면, 동성 부부에게도 부모 지위에 대한 동등한 접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 부부는 둘 다 동시에 생물학적 부모가 될 수 없기에, 법은 신체가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해야 했다. 그 결과, ‘평등’의 실현은 부모성을 생물학적 현실에서 분리하는 법적 구조를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조생식과 대리모 제도는 부모성을 법적으로 확립하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 의도 기반 부모성 규정은 아동의 출생을 계획하거나 주도한 성인들이 생물학적 연결과 무관하게 법적 부모로 인정받도록 보장한다.
결국 법은 점점 더 “누가 아이를 낳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아이를 양육하기로 계약했는가”에 따라 부모성을 정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법 체계 내에서 뚜렷한 긴장을 낳는다. 한편에서는 부모 권리 교리가 외부 개입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외부인을 아동의 법적 부모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비는 개입의 규모를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학교가 부모를 속이는 문서를 보내지 못하게 하거나 특정 교실 정책을 제한하는 것은 비교적 작은 개입이다. 그러나 부모성 자체를 재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오늘날 법은 사소한 개입에는 강하게 대응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개입—부모의 교체—를 허용하고 있다.
이 모순의 결과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일부 학군이 아동을 가족이 아닌 기관의 소유처럼 취급하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널리 알려진 한 사례에서, 애비게일 마틴은 학교가 부모의 동의 없이 딸 야엘리의 사회적 성전환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야엘리는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사건은 많은 부모 권리 소송의 근저에 있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즉, 아동에 대한 권한을 주장하는 기관이, 가장 큰 책임과 사랑을 지닌 부모를 배제한 채, 삶을 바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위험은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도 기반 부모성 논리는 생물학적 연관이 없고 입양 절차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성인들과 함께 아동을 배치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지난해,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들을 소개한 두 남성의 영상이 화제가 되었으나, 곧 그중 한 명이 성범죄 전과자였음이 밝혀졌다.
부모의 권리는 단순한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가 아동이 안전하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질서에 가까운 것이다.
‘Mirabelli’ 판결은 전통적 이해를 재확인하였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권위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세기 이상 미국 법원은 부모-자녀 관계를 법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관계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현대 부모성 법은 점점 더 국가가 애초에 누가 부모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두 이론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 결국 우리의 법 체계는 부모성이 국가에 앞서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에 의존하는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