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도 중요하다. 이는 특히 도덕적 중대성이 큰 전쟁 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백악관에서 나오는 절멸주의적 수사에 깊은 우려를 느낀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무디게 하고,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을 부식시킨다.
이란이 미국의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자주 연장되곤 하던 시한이 다가오고 있던 부활 주일에, 도널드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란 지도자들이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민간 기반시설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월요일 기자회견에서는 그 위협 수위를 더 높였다. “그 나라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제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밤은 내일 밤일지도 모른다.” 그다음 날 트럼프는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하나의 문명 전체가 오늘 밤 죽게 될 것이며,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일부는 절멸이라는 말이 백악관이 실제로 핵무기 사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불안해한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멸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것이 단지 상대를 겁주기 위해 의도된 과장된 표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제9계명은 이렇게 말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이 금지는 거짓말, 위증, 그리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왜곡된 진술을 금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전통은 이 계명을 적극적인 의미로도 읽는다. 우리는 진실해야 할 의무, 정직하고 간사함 없이 말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흔히 그렇듯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은 공적 삶의 현실 앞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직 후보자는 여론조사 결과 자신의 진정한 신념이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사안에 침묵하곤 한다. 또는 정치 현실상 그 약속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세금을 낮추겠다거나 유권자들에게 다른 어떤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과장해서 공약하기도 한다.
더구나 선거 정치는 흔히 말하듯 “몸싸움이 따르는 경기”다. 선거 승리를 위한 싸움 속에서 후보자들은 종종 상대의 공약과 인격적 자질에 대해 거칠고 왜곡된 주장을 쏟아낸다.
2015년 트럼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순간부터, 그는 정치적 발언의 경계를 밀어붙여 왔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의 조야하고 과장된 상대 비하는 선거적 정직성이라는 역설적 성격을 드러냈다.
수십 년 동안 국가 정치인들은 비열한 비난을 유포하기 위해 언론이라는 대리인을 활용해 왔다. 정치인들 자신도 트럼프를 향해 “인종차별주의자”, “파시스트” 같은 인격 말살적 낙인을 서슴없이 던졌고, 트럼프는 그에 맞서 똑같이 노골적이고 선동적인 수사로 대응했다.
나는 격앙된 정치적 수사학이, 오늘날 좌우를 막론하고 흔해진 그 수사학이, 심지가 굳지 못한 영혼들로 하여금 정치적 폭력에 호소하는 길을 고려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미 도덕 감각이 무뎌진 소수는 더 깊이 타락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더러워진다. 우리의 시민적 상상력은 오염되고, 우리의 기준은 낮아진다.
전쟁 시기에는 절제되지 않고 과장된 수사의 위험이 훨씬 더 중대하다. 애국자들로서 우리는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지역의 평화를 확보하며, 이란을 억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도덕한 수단을 상상하는 유혹에 우리가 빠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집단적 도덕 감각을 해친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이들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그것은 종종 예수님께서도 배척하지 않으신 뱀 같은 지혜를 요구한다. 나는 우리를 전쟁으로 이끄는 이들이, 상황이 간계를 요구하는데도 어리석게 신뢰하고 지나치게 정직했던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쟁 시기에는 정부가 기만을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심지어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흔히 그러하듯, 자기 국민을 속이는 것조차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지도력에는 교육적 차원도 있다. 지도자들에게는 덕을 장려하고 악덕을 억제할 의무가 있다. 민주주의 문화 안에서는 이 의무가, 때로는 대표성의 명령 때문에 크게 약화되거나 심지어 압도되기도 한다. 많은 정치사상가들이 인식했듯, 지도자들은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평범한 것, 심지어 비열한 것과 타협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전쟁 시기는 다르다. 생명이 걸려 있다. 갈등의 열기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피에 대한 욕망에 빠지기 쉽다. 우리의 도덕적 시야는 너무도 쉽게 좁아질 수 있다. 기술 시대인 오늘날 전쟁 기계는 실로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되었다. 핵무기의 망령을 굳이 불러올 필요도 없다. 1945년 3월 미군 전폭기가 도쿄를 소이탄으로 폭격했을 때, 단 이틀 동안 거의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트럼프 행정부는 극단적이고 유혈적인 수사에 빠져 왔다. 그 관리들은 자신들이 미국의 적들을 위협하고 미국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그들의 전쟁 수사, 특히 문명 전체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식의 극악한 발언은 미국 국민을 타락시키고 우리의 양심을 무디게 한다.
트럼프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과장되고 무책임한 수사를 이제 끝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