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란 여성 축구팀 |
이란의 교수형 위기에 놓였던 여성 8명을 둘러싼 사태는 한 가지 냉엄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독재정권은 침묵 앞에서는 잔혹해지고, 국제사회의 압박 앞에서는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지도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이 여성들의 석방과 처형 중단을 촉구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권을 협상의 주변 의제로 밀어내지 않고, 자유를 외교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린 정치적 행동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1일 이란 지도부에 대해 처형 위기에 놓였다고 알려진 여성 8명을 석방하라고 공개 요청했고, 이를 향후 협상의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이란이 이들의 처형을 중단했으며 일부는 즉시 석방되고 나머지는 단기 수감 뒤 풀려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 사법부는 애초에 처형 계획 자체가 없었다며 반박했지만, 인권단체와 반체제 활동가들은 일부 여성들이 실제로 중대한 혐의와 사형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이 논란의 세부 공방을 넘어선 본질이다. 이란 정권이 부인하든 말든, 이란의 여성과 청년들이 자유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고문과 장기 구금, 사형 위협에 시달려왔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히잡 강제, 시위 탄압, 사법 살인, 혁명수비대의 폭력은 이란 국민을 억압해 온 신정독재의 민낯이다. 여성의 생명과 자유를 정권의 공포정치 수단으로 삼는 체제는 결코 정상국가라 할 수 없다.
이번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는 이란 핵 문제와 안보 협상의 한복판에서 인도주의 문제를 별개의 부차적 사안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 정권이 국제사회와 대화하고 싶다면 먼저 자국민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힘 없는 호소가 아니라 압박과 협상을 결합한 현실주의적 인권 외교였다.
자유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독재정권을 상대할 때 인권을 뒤로 미루는 외교는 결국 독재자에게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핵 협상, 경제 제재, 군사적 억지, 외교 교섭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수단의 최종 목적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
이란의 감옥에 갇힌 여성들, 거리에서 체포된 청년들, 자유를 외쳤다는 이유로 사형장 앞에 선 시민들을 외면한 채 어떤 평화도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
이란 국민은 적이 아니다. 적은 이란 국민을 억압하는 신정독재 권력이며, 혁명수비대의 폭력 통치이며, 여성을 침묵시키고 청년의 미래를 짓밟는 전체주의 체제다. 국제사회는 이란인들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정치범 석방, 사형 중단, 여성 인권 보장, 표현과 집회의 자유 회복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압박이 실제로 여성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외교적 성과를 넘어 자유 세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침묵은 독재의 편이다. 압박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란 정권은 더 이상 국민을 인질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교수대가 아니라 자유의 광장이 이란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이제 국제사회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란 여성들과 양심수를 석방하라. 사형을 멈추라. 그리고 이란 국민이 하루속히 공포가 아닌 자유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라. 자유를 향한 이란인들의 외침은 결코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 세계는 그들과 함께 서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