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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 대회 참가자들을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으로 집단 참관시킨 것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청년 세대를 체제의 미래가 아니라 전쟁 동원의 예비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조선신보는 이를 “청춘과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영웅전기”라고 미화했지만, 그 이면에는 타국 전쟁에 투입된 북한 청년들의 죽음을 체제 선전의 재료로 삼는 냉혹한 정치가 자리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청년동맹 제11차 대회를 통해 청년을 국가 목표 수행의 “전위”로 내세웠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북한 병사들의 희생을 노골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쿠르스크 지역 등에 병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고,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북한이 약 1만4천 명 규모의 병력을 보냈으며 6천 명 이상이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전했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 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관 기사에는 “피묻은 입당청원서”, “영웅적 최후”, “결사의 분투” 같은 표현이 반복된다. 이는 청년들에게 생명의 존엄을 가르치는 언어가 아니라 죽음의 순응을 강요하는 언어다.
국가가 젊은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 죽음을 ‘충성’과 ‘영광’으로 포장해 다음 세대에게 같은 길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해외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은 본질을 흐리는 선전용 언어다. 북한 청년들이 왜 한반도와 직접 관련 없는 전장에 보내졌는지, 그 파병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가족들은 제대로 통보받았는지, 부상자와 전사자 유족은 어떤 처우를 받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직 김정은의 “사랑”, 당과 조국에 대한 “충성”, 원쑤에 대한 “징벌”만 강조된다. 이것은 국가가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 있는 설명조차 회피하는 태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년동맹 참가자들을 이 기념관에 데려간 의도다. 이는 추모 교육이라기보다 정치적 각인 작업에 가깝다. 북한 청년들에게 “당과 조국의 명령” 앞에서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슬픔, 인간의 존엄마저 뒤로 밀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의식이다.
기념관은 죽은 병사들을 기리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는 청년들에게 다음 희생을 준비시키는 체제 교육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청년을 ‘미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미래를 전쟁과 노동, 충성 경쟁 속에 소모시키고 있다. 청년동맹은 자발적 시민조직이 아니라 당의 지시를 청년 세대에 전달하는 정치 동원 기구다. 이번 참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직업을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이념적 궤도 안에서 죽음까지 영광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북한 선전문에서 가장 부재한 단어는 ‘인권’이다. 전장에 투입된 병사들의 의사, 생존자의 트라우마, 유가족의 고통, 실종자 확인 절차, 전사자 신원 공개, 국제법적 책임 문제는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성전”, “영생”, “영웅”, “불멸” 같은 과장된 단어만 넘쳐난다.
이는 인간의 죽음을 인간의 언어로 다루지 않고, 체제 유지의 종교적 의례처럼 바꾸어버리는 전체주의 선전의 전형이다.
김정은 정권은 청년들이 조국의 존엄과 명예를 빛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의 존엄은 젊은이를 타국 전쟁터에 보내 죽게 만드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국가의 명예는 청년의 생명을 지키고, 그들의 자유로운 미래를 보장하며, 죽음이 발생했을 때 진실과 책임을 밝히는 데서 나온다. 북한이 기념관을 아무리 웅장하게 세워도, 그 안에 감춰진 것은 영광이 아니라 청년 세대를 희생시킨 권력의 책임이다.
결국 이번 참관 행사는 북한 청년들에게 보내는 무서운 정치적 신호다. “너희도 필요하면 전장으로 가야 하며, 죽음마저 충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다.
북한 정권이 진정 청년을 사랑한다면, 그들을 기념관 앞에서 눈물 흘리게 할 것이 아니라 불의의 전쟁터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 청년의 피로 권력의 기념비를 세우는 체제는 결코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