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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대회 참가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통신은 참가자들의 “폭풍 같은 만세”, “열화의 환호”, “애국충성의 구호”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이를 청년들의 자발적 감격과 충성심의 표현처럼 포장했다. 그러나 이 보도의 본질은 청년 세대의 희망과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을 다시 한 번 당과 수령의 정치적 동원 대상으로 묶어두려는 체제 선전의 전형적 장면이다.
북한은 이번 행사에서 청년들을 “척후대”, “돌격대”, “청년전위”, “돌격투사”라고 불렀다. 언뜻 보면 젊은 세대에 대한 찬사처럼 보이지만, 그 속뜻은 분명하다. 북한 체제에서 청년은 독립된 인격과 꿈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당의 명령을 앞장서 수행해야 하는 조직적 동원 인력이다.
청년의 삶은 개인의 선택, 창의성, 직업적 성취, 가족의 행복을 중심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직 “당의 이상 실현”, “사회주의 건설”, “대회 결정 관철”이라는 정치적 과업에 종속된다.
이번 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김정은을 “자애로운 어버이”, “아버지원수님”으로 부르는 표현이다. 북한은 여전히 최고지도자를 국가의 통치자가 아니라 가족적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다.
청년들이 지도자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환호하고,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은 정상 국가의 청년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자를 중심으로 모든 감정과 언어를 조직하는 전체주의적 의례에 가깝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미래’가 아니라 ‘희생’이라는 점이다. 보도는 청년들의 “피와 땀”, “전설적 위훈”, “영웅적 투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북한 청년들이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열악한 경제, 제한된 이동의 자유, 폐쇄된 정보 환경, 사상 검열, 강제 동원, 군 복무와 노동 부담이다. 청년의 자부심을 말하지만, 정작 청년에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자유는 허락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청년을 가장 두려워한다. 외부 정보에 가장 민감하고, 시장 경험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가장 빨리 체감하며, 남한 문화와 세계의 변화를 가장 쉽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바로 청년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청년동맹을 강화하고, “혁명적 대중운동”과 “사회주의애국운동”을 강조하며, 청년들을 다시 조직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 이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이다.
특히 김정은이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청년들의 풍모”를 운운한 대목은 역설적이다. 실제로 세계 어느 정상 국가도 청년들에게 지도자 숭배와 정치 구호 합창을 미래의 길로 제시하지 않는다.
정상 국가의 청년정책은 교육, 일자리, 창업, 주거, 표현의 자유, 문화적 기회, 국제 교류를 확대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북한은 청년에게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더 강한 충성을 요구한다.
이번 보도는 청년동맹의 역할을 “모든 청년들을 당의 이상 실현에 삶의 좌표를 정하도록 교양육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북한 체제의 본질은 충분히 드러난다.
청년의 삶의 좌표를 청년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정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식 청년정책의 핵심이다. 개인의 꿈은 당의 과업 앞에서 사라지고, 청춘의 보람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으로만 인정된다.
조선중앙통신이 행사장을 “환희”와 “격정”으로 묘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침묵하는 청년들의 현실이 있다. 그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 없고, 자유롭게 떠날 수 없으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당국이 허락한 언어로만 말해야 하고, 조직이 정해준 자리에서만 박수쳐야 하며, 지도자가 등장하면 환호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의 웃음과 구호가 과연 자발적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은 어느 사회에서나 미래의 상징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청년은 미래가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김정은 정권은 청년들에게 세계를 향한 길을 열어주는 대신, 낡은 혁명 구호와 충성 의례 속에 가두고 있다. 사진 한 장은 남지만, 그 사진 속 청년들의 삶은 여전히 빈곤과 통제, 감시와 동원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이번 김정은의 청년동맹 대회 참가자 기념사진은 북한 체제가 청년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겉으로는 “청년중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청년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 맹세가 아니라 자유로운 미래다. 구호가 아니라 선택권이며, 기념사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애국청년”을 외쳐도, 청년의 애국심은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애국은 자유로운 시민의 책임에서 나온다. 청년을 지도자의 배경으로 세워놓고 환호하게 만드는 체제는 강한 체제가 아니다.
청년의 두려움 위에 서 있는 권력일 뿐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