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종교 기사 제목:

[USA 가톨릭 350] 내가 정교회 신자가 된 이유 ①

2026-05-26 05:4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스티븐 팩스 레너드 Stephen Pax Leonard writes from Moscow. 모스크바 거주 기고가


양파 모양의 둥근 돔들이 코린토식 기둥 위에 얹혀 있었고, 바로크 양식의 회반죽 아키트레이브는 하루가 저물 무렵 나른한 도시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내가 카잔 대성당에 다가갔을 때 시계는 다섯 시를 알렸다. 성당 안은 어두웠지만 금빛 장식으로 가장자리가 빛나고 있었다.

향 냄새의 작은 구름들이 색 바랜 벽화들 사이에 머물러 있었고, 그 색조들은 스푸마토처럼 서로 번져 있었다. 때는 2015년 12월 말의 금요일 저녁이었고, 나는 관광객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있었다. 내가 정교회 성당에서 거룩한 전례에 참석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머릿수건을 두른 신비로운 여인들은 초에 불을 붙이고, 오래된 성화에 입 맞추기 위해 줄을 섰다. 그들은 램프와 촛불에 비친 성해들 사이를 오가며 유리에 입을 맞추고는, 곧바로 그 자국을 닦아냈다. 부드럽고도 열렬한 속삭임들이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둥근 천장의 신랑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교회 슬라브어—부드러운 치찰음과 구개 마찰음, 지그재그처럼 이어지는 문장과 반복적인 시학을 지닌 언어—는 속삭임과 성가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성소등들이 놋쇠 사슬에 매달려 있었다. 어딘가에서 제1안티폰이 무반주로 불리고 있었다. 그것은 신비로운 환시의 파편들, 저 너머로 이어지는 다리와 같았다. 인간 목소리의 순수성, 찬미의 가장 완전한 악기. 이곳에는 기타가 없었다. 오직 전통과 연속성만이 있었다.

무거운 수단을 입은 수염 난 남자들이 이코노스타시스 뒤편의 숨겨진 문들에서 나타나, 짤랑거리는 향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그들은 그림자를 끌고 가듯 사라졌다가, 잠시 뒤 또 다른 숨겨진 문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대리석 무늬의 가장자리를 지닌 무겁고 오래된 책을 들고 있었다. 사제의 굵고 낮은 바소 프로폰도 목소리가 암보에서 울려 퍼졌다.

예식이 끝날 무렵, 나는 내가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경외와 거룩함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예배 형식은 내면의 자아, 평화의 사적 내밀한 성소에 호소했다.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낮게 기운 태양의 붉은빛 속에서 반짝이는 돔 아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걸었다.

때때로 나는 추위를 피하고 그 거룩함의 다른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성당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내가 아주 오래된 과거로 이끌려 가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부여받고 있다고 느꼈다. 계시의 단 한 순간으로도 한 사람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그 도시에서 닷새를 보낸 뒤 나는 옥스퍼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초월의 그 희미한 빛들을 잊을 수 없었다. 이듬해 나는 루마니아로 갔고, 다시금 교회에서 교회로 옮겨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정교회의 연속성, 확고함, 그리고 철학적 매력에 이끌리고 있었다.

나는 유신론적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무신론에 유혹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파스칼의 내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었지만, 현대의 쾌락주의적 세계에서 그 길이 너무 어렵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어 인류학자이며, 오랫동안 교회를 방문하는 일을 즐겨 왔다. 부분적으로는 교회가 지역 문화를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운명이 개입했다. 나는 모스크바의 한 대학에서 부교수직을 제안받았다. 내가 러시아로 온 것이 하느님의 인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몇 해 뒤 내가 정교회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의 일이었다.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 나는 도시 곳곳의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자주 찾았다. 제3의 로마로 불리는 모스크바에는 수백 개의 정교회 성당이 있다. 처음에 내 관심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민족지학적인 것이었다. 나는 교회 슬라브어와, 신자들이 그 언어와 맺는 관계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그 언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해마다 부활절과 성탄절이면 나는 17세기에 세워진 성 니콜라오 자선가 성당에서 거룩한 전례에 참석하곤 했다. 그것은 나를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에 떠 있게 하는 현상학적 각성이었다.

아마도 나는 거룩한 러시아의 낭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다. 수백 년 동안 예배자들이 찾아온 이 장소들에서 나는 성스러움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느꼈다. 그곳에는 더 강한 타자성의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이 나를 묘사하듯 내가 이국 취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나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 타자성은 내게 큰 매력을 지닌다. 새로 지은 성당에서 영어로 드리는 정교회 예식은 결코 같은 성스러운 매혹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매혹이 단지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내 마음은 성스러움을 갈망하고 있었다. 채워져야 할 공허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저 관찰자일 수 없었다.

나는 2023년 8월에 안드레이 신부를 만났다. 우리는 크렘린에서 아주 가까운 모스크바 중심부의 성 안티파스 성당 정원 벤치에 앉았다. 안드레이 신부의 첫 질문은 “몇 살입니까?”였다. 어쩌면 그는 한 사람이 인생의 이 시점에서 하느님을 찾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 뒤에는 “왜 정교회 신자가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영국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내게는 답이 없었다.

나는 아직 내가 실제로 개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초월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쩌면 거만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솔직한 대답이었다. 나는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내가 받아 온 그 암시들을 더 깊게 하고 싶었다.

만남이 끝날 때, 안드레이 신부는 내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우리는 둘 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그는 종이에 그 번호를 적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내 왓츠앱 목록에 그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이 떠 있었다. 나는 나를 안드레이 신부와 연결해 준 친구 올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말했다.

“아, 그분과 계속 함께하세요. 그분은 당신의 바튜슈카예요.” 곧 영적 지도자라는 뜻이었다. 때때로 나는 이 ‘개종’의 과정을 내가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마치 내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섯 달 동안 복음서, 시편, 『순례자의 길』, 그리고 초기 교부들의 글을 읽었다. 또한 슈메만, 알렉산드르 멘, 세라핌 로즈의 저작들도 읽었다. 물론 의심은 많았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내가 해야 할 평생 고해였다. 그것도 러시아어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구성해야 한단 말인가? 이 점에서 요한 크레스티안킨의 『고해 준비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성당 문을 닫고 평범한 세상의 번뇌를 밖으로 밀어낸다. 몇몇 예배자들이 전실 예배당 안을 조심스레 오간다. 고해자들이 줄을 서서 자신들의 죄과가 지워지기를 청한다. 물음표처럼 굽은 노파들이 간구를 속삭인다. 떨어지는 촛농. 하느님께서 죽을 운명을 지닌 이들의 고백을 듣고 계신다.

때는 2024년 3월 어느 수요일 아침 여덟 시다. 나는 조과에 참석한 회중에 합류하여 늘 서던 자리에 선다. 땀에 젖은 내 손은 지난 몇 주 동안 힘들여 작성한 다섯 장짜리 평생 고해문을 꼭 쥐고 있다. 나는 조금 긴장해 있다. 안드레이 신부가 내 고해를 이해할지, 또 이 예식이 실제로 무엇을 포함할지 확신이 없었다.

약 20분 뒤, 안드레이 신부가 나타난다. 그는 나를 지하 경당으로 데려가 성녀 마트로나의 성화에 입 맞추고, 이어 작은 개인 방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그가 침묵을 잡담으로라도 채워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는 내 몸이 조금씩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나를 아날로기온, 곧 내가 고해문을 읽을 독서대로 데려가 성경과 십자가에 입 맞추라고 한다. 나는 고해문을 읽는다. 몇몇 낯선 단어에서 더듬거리며 읽는다.

내 앞에는 원고가 놓여 있고, 안드레이 신부가 내가 말하는 것을 확인하려고 이따금 그 원고를 들여다보는 것이 보인다. 아마 15분에서 20분쯤 걸렸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끝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질문도, 설명을 요구하는 말도 없다. 나는 중간에 끊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 속에 서 있다.

안드레이 신부는 그 원고를 가져가 조각조각 찢고, 그것을 가지고 나가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말한다. 하나의 삶이 끝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는 내 머리 위에 에피트라킬리온을 덮고 사죄경의 말씀을 선포한다. 이어 그는 여러 개의 긴 기도를 바친다. 나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특정 서약들을 소리 내어 읽으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런 다음 니케아 신경을 외우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교회 슬라브어로 암기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본문을 받는다.

더 많은 기도들이 이어지고, 그 뒤 그는 내게 양말과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그는 가위와 성유, 여러 작은 도구들이 들어 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연다. 그것은 수리 도구 상자처럼 보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성유 붓을 거룩한 기름에 적셔 내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고, 이어 내 얼굴, 귀, 손, 발 곳곳에도 십자가를 그린다. 그것은 왕다운 예식이었다.

그는 내게 전례에 참석하고 영성체를 하라고 말한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신고 신랑으로 올라간다. 회중은 무릎을 꿇고 있다. 나는 곧 이것이 평소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전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미리 축성된 선물의 전례가 거행되는 날 견진, 곧 성유 도유를 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 거룩한 전례에서 축성된 성체를 영하는 오래된 예식이다. 이 예식은 길고 매우 참회적이며, 무릎 꿇기와 기도가 많다.

전례의 의례적 반복은 끝과 시작이 뒤섞인 나선이다. 전례가 끝날 때 영성체가 있다. 이것은 내가 신적 선물에 참여하는 첫 순간이 될 것이다. 나는 두 팔을 가슴 위에 교차하고 예배자들의 줄에 선다. 나는 내 정교회 이름, 스테판을 말하고, 거룩한 선물을 영한 뒤 성작에 입 맞춘다. 예전에는 입맞춤을 성적인 것과 연관 지었지만, 이제 점점 더 그것을 나의 새로운 영적 길과 연관 짓게 된다.

나는 팔을 교차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신랑을 걸어 나온다. 나는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실제로 10킬로그램쯤 가벼워진 것처럼 느꼈다. 고요함과 깊은 행복을 느꼈다. 이 감정들은 내가 성유 도유를 받은 뒤 약 두 달 동안 지속되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리베르타임즈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리베르타임즈로고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도희윤)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길 12 타운빌 2층 | 이메일: libertimes.kr@gmail.com | 전화번호 : 02-735-1210
등록번호 : 415-82-89144 | 등록일자 : 2020년 10월 7일 | 발행/편집인 : 도희윤
기사제보 및 시민기자 지원: libertimes.kr@gmail.com
[구독 / 후원계좌 : 기업은행 035 - 110706 - 04 - 014 리베르타스협동조합]
Copyright @리베르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