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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71] 나이젤 비거의 ‘두터운 붉은 선’

2026-06-16 08:0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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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더건 John Duggan writes from Surrey, England. 영국 서리 칼럼리스트


옥스퍼드 대학교 도덕신학 명예 레지우스 교수인 나이젤 비거 교수는 9년째 문화전쟁의 참전자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인 「윤리와 제국」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프리얌바다 고팔 박사의 주목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다. 고팔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맙소사. 이건 심각한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한다.”

그때가 2017년이었다. 투쟁은 계속된다. 지난해 말, 비거는 더블린의 한 중등학교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해 강연할 예정이었다. 그가 역사와 관련하여 내세우는 두 가지 대표적 주장, 곧 영국인은 자국의 식민지 과거에서 자부심과 수치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제국 통치가 때로는 정당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일랜드에서 언제나 거센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논점들이 아예 제기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비거는 강연 전날 밤 초청 취소 통보를 받았다.

더블린은 무엇을 놓친 것일까? 문화전쟁의 소음과 격정 속에서 비거는 저격수처럼 처신한다. 그는 냉정하게 “아카데미비스트”들의 어리석은 논변을 하나씩 겨냥해 무너뜨린다. 그의 최신 저서 『새로운 암흑시대』에서 그는 여러 자료원을 동원하여 영국이 심각하고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이라는 주장들을 반박한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다. “그동안 별로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불공정한 불이익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효과적인 구제의 전제조건이다.” “눈에 보이는 단 한 번의 취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자기검열을 낳는다.” 이 책에는 우리 시대를 위한 경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비거는 마지못해 싸우는 전사다. 그는 정복하기보다는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그가 방어하는 조국은 “자유주의적 기질”이다. 곧 사람들이 낯선 관점에 대해 사려 깊고 시민적으로 응답하는 태도다. 이러한 정신 안에서, 그리고 역사에 대한 그의 전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굵은 붉은 선을 긋기 전에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탈식민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영국 교육에서 어느 정도의 유럽중심성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영국은 ‘아무 곳’이 아니다. 영국은 북서유럽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정한 역사를 지녔고, 특정한 제도와 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마찬가지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계몽주의가 풀어놓은 오만한 합리주의와 20세기의 치명적 전체주의들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반응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진리를 문제 삼는 그 경향들의 효과는 하나의 객관적 항소 법정, 곧 차이를 합리적이고 평화롭게 해결하고, 아무리 긴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법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입장과 서사로 후퇴하고, 의견 차이를 해결하는 데 날것의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 시대에 그 권력이란 곧 취소할 수 있는 권력을 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대로 기능하는 항소 법정이 있다면, 물론 양측—비거와 그의 적대자들—이 제시하는 증거의 약점들을 드러낼 것이다. 『새로운 암흑시대』에는 몇몇 의문스러운 주장과 생략이 있다. 예컨대 이 책은 서로 다른 대목에서 영국 경제에서 노예무역이 차지한 중요성에 대해 세 가지 상충하는 추정치를 제시하는 듯 보인다. 각각은 전문가 의견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예이츠의 걸작 「재림」이 아일랜드 역사와 관련하여 언제 쓰였는지에 대한 비거의 연대기 또한 잘못되어 있으며, 그 결과 그 시를 훨씬 더 큰 세계적 대격변들과 연결해 읽을 기회를 희생한다. 또한 그는 프란츠 파농 같은 인물이 어떻게 자기 확신 속에 숨어 있던 어리석음과 위험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었는지를 더 충분히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거의 반대자들이 그런 약점들을 알아차리거나 찾아보려 할지 의심스럽다. 그들의 전술은 다르며,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자기 나라에 대해 최악의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듯한 경향에 당혹한 비거가 “여기서 심리적으로, 아니 영적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외칠 때, 그의 분노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이것이야말로 워크주의의 궁극적 무기일 수 있지 않은가? 진리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실제로 주고받는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들을 거듭거듭 일종의 시시포스적(무의미한 노동과 좌절) 고통 속으로 유인하여, 이성으로 상대할 수 없는 것 위에 이성의 도구들을 반복해서 산산조각 내게 만드는 것 말이다.

비거는 선의로 대화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정신을 무너뜨리도록 정교하게 조율된 것처럼 읽히는 몇몇 진술들을 기록한다. 예컨대 그는 에든버러 대학교 사회인류학 학생들의 선언문을 재현한다. 그 선언은 그들의 학문 목적에 관해 고귀하고 본질적인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듯 보이지만, 읽어보면 오히려 운동 단체의 전단지에 가깝다. 과시적인 도덕적 자기 확신의 벽 뒤에 자리한 범주 오류에 근거한 논변과 도대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비거는 현명하게도 마지막에는 전투의 열기 위로 올라서려 한다. 그는 현대 대학이 그 사이에 붙들려 있는 덕과 악덕에 관한 두 개의 결론 장, 일종의 쌍폭화를 제시한다. 악덕들—권위를 내세워 누르기, 회피적 생략, 허수아비 논증 세우기 등—은 대학이 그 존재 이유, 곧 “비판적 검증을 통한 진리의 발견”을 수행할 능력을 파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길러야 하고 모범으로 보여야 할 덕은 절제 또는 자기 통제, 겸손과 순명적 배움의 자세, 인내, 용기다. 이 목록은 성령의 은사들과 그리 멀지 않은 사촌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비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우리가 열기보다 빛을 가지려 한다면, 덕을 기르는 일에서의 휴가는 끝나야 한다.”

『새로운 암흑시대』를 내려놓은 뒤, 내 마음에는 두 명의 가톨릭 사상가가 떠올랐다. 그들은 이 문제를 설명하는 힘으로 충만해 보였다.

먼저 나는 G. K. 체스터턴을 떠올렸다. 그는 『정통』에서 이렇게 썼다. “현대 세계는 미쳐버린 옛 그리스도교적 덕들로 가득 차 있다. 덕들이 미쳐버린 것은 서로에게서 고립되어 홀로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진리만을 중시한다. 그런데 그들의 진리는 무자비하다. 어떤 인도주의자들은 연민만을 중시한다. 그런데 그들의 연민은, 유감스럽게도, 종종 진실하지 않다.”

나이젤 비거는 체스터턴이 120년 전에 식별한 현상이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진 21세기 초의 전개 양상을 추적했다. 워크주의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지는 연민이다. 그러나 연민, 곧 측은지심과 진리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든 다시 손을 맞잡고 걸어야 한다. ‘진리 안의 사랑’ 말이다.

그리고 나는 존 헨리 뉴먼을 떠올렸다. 뉴먼은 『아폴로지아』에서 옥스퍼드 운동이 급속히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먼저 신학자나 철학자나 교회사학자의 영향이 아니라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월터 스콧 경의 영향을 언급한다. 그는 스콧이 “사람들의 마음을 중세의 방향으로 돌려놓았고”, “독자들에게 반작용을 일으켜 그들의 정신적 갈증을 자극하고, 그들의 희망을 먹이며, 한 번 보게 되면 쉽게 잊히지 않는 환상들을 그들 앞에 제시했고, 나중에 제일 원리로 호소될 수 있는 더 고귀한 관념들을 조용히 주입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암흑시대』는 우리 대학들 안에서 참된 것과 선한 것의 재결합을 촉구하는 감동적인 호소다. 그러나 아마도 궁극적 효력을 위해서는, 이 대의가 어떻게든 아름다운 것에도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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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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