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 복음 22장 21절 :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7월 4일,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1787년 헌법제정회의를 마치고 나온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필라델피아의 명문가 부인 엘리자베스 윌링 파월이 던진 질문과 그 대답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녀가 “프랭클린 박사님, 그래서 우리가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공화국입니까, 군주국입니까?”라고 묻자, 프랭클린은 유명하게도 이렇게 답했다. “공화국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짧은 응수는 미합중국에 관한 하나의 기본 사실을 강조한다.
곧 우리는 공화주의적 자치라는 민주적 실험 속에 있으며,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 시험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안에는 독립선언서가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더라도 암시하고 있는 하나의 진리가 담겨 있다.
이 실험이 제 궤도를 유지하려면, 곧 민주공화국의 정치 기구가 개인의 인간적 번영과 사회적 연대를 촉진하도록 하려면, 특정한 덕을 살아가는 충분한 규모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진리이다.
우리의 공화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것을 어떤 형태의 권위주의에 넘겨 잃어버리게 하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워싱턴 내셔널 몰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짧은 표어,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렉싱턴에서 노르망디 해변과 장진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궁극의 희생을 바친 이들에게 우리가 진 빚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의 실험이 번영하고, 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공동선을 위하여 자유를 고귀하게 살아가도록 부름받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출간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도 존 코트니 머리 신부의 책 『우리는 이 진리들을 붙든다: 미국의 명제에 대한 가톨릭적 성찰』은 고전적 가톨릭 정치 이론에 바탕을 둔 심오한 분석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무엇이 미합중국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해명한다. 그 묵직한 저작에서 머리 신부는 미국 건국의 심층 토양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토양을 일군 공로를 패트릭 드닌과 다른 이들과는 달리 17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존 로크에게만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서 머리 신부는 독립선언서를 결국 떠받치게 될 가장 깊은 개념적 뿌리, 곧 기초 사상들을 발굴했다.
그 첫 번째 사상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개인뿐 아니라 나라들 위에도 미친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과 카이사르의 것을 구별하셨을 때, 그분은 카이사르의 명령권이 제한되어 있음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러므로 제한 정부와 종교 자유에 관한 미국적 확신의 가장 깊고 튼튼한 주근은 로크의 『통치론』이 아니라 마태오 복음 22장 21절이다. 가톨릭 통합주의자들, 포스트리버럴들, 그리고 진보적 세속주의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우리가 25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선언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번째 기초 사상은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응고된 별먼지도 아니고 걸어 다니는 알고리즘도 아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 있도록 지적, 영적, 도덕적 능력을 부여하신 피조물이다.
랜들 톰슨의 「자유의 증언」 첫 악장의 감동적인 울림에 귀 기울여 보라. 그 제퍼슨적 가사,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도 주셨다. 폭력의 손은 그것들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분리할 수는 없다”는 말을 묵상해 보라.
그리고 영광스러운 7월 4일에 잠시 시간을 내어, 오늘날 우리 나라 안에서 파괴를 위협하는 다른 “폭력의 손들”이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라. 나로서는 소셜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허풍쟁이들과 반유대주의 팟캐스터들의 저속한 거짓말들을 바로 그런 범주 안에서 생각한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자치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통치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 국민”은 공동선과 관련된 사안에서 통치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권리를 가진다. 더 나아가 “국민” 안에는 정의에 대한 본능이 있으며, 그것은 활기 있는 공적 도덕 문화에 의해 길러져야 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문화적 공기는 인간 인격에 관하여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그리고 가톨릭 신자라면 계시로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할, 내재된 진리들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들이 미국 자유의 나무 뿌리를 이루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기초 사상이다.
독립선언서가 명시적으로 주장하거나 암시하는 진리들을 한데 모으면, 그것들은 이 하나의 중심 진리로 요약된다. 덕 있는 국민만이 개인들이 연대의 사회 안에서 번영하도록 자유를 살아갈 수 있다. 덕 있는 국민만이 자유가 방종으로 타락하여 자유의 제도들을 부패시키고, 그 제도들이 결국 폭정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자유를 살아갈 수 있다.
250년 전 미국 건국자들이 제기한 주장은 자유로운 정부가 필연적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장은 자유로운 정부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랭클린 박사가 파월 부인에게 일깨워주었듯이, 그 가능성은 거듭거듭 시험받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분명히 시험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합중국이라는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릴 때,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다시 일깨우도록 하자.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