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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조화환 놓인 배재고 |
대한민국 사회가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치가 모든 영역을 집어삼키고, 교육 현장마저 정치적 여론에 휘둘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고교 야구 응원전에서 불거진 이른바 5·18 ‘밈’ 논란은 단순한 학생 일탈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와 교육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배재고 학생들의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5·18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사건이며, 그 희생과 상처를 가볍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이를 응원 구호나 조롱성 표현으로 사용했다면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금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학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 사태를 여기까지 키운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애초에 5·18 ‘스타벅스 탱크’ 논란은 정치권의 과잉 개입과 정쟁화 속에서 급격히 확산됐다. 기업의 부주의한 홍보 문구가 있었다면 그것은 사실관계를 따지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놓치지 않고 진영 대결의 소재로 삼았다. 역사적 아픔을 차분히 성찰할 기회로 삼기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적 무기로 소비했다. 그 결과 5·18은 엄숙한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조롱과 패러디, 밈의 소재로 변질됐다.
그 책임을 과연 학생들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어린 학생들이 사회적 분위기와 온라인 문화를 흡수해 미숙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먼저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어른들이다. 5·18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만들고, 역사적 사건을 진영의 언어로만 소비해 온 정치권이야말로 이 사태의 1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기 전에, 정치권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독성 강한 정치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교육 현장의 대응이다. 교육은 학생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미숙한 학생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치고,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 당국과 관련 기관은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중징계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다.
고교 야구 응원석에까지 정치가 들어오고, 학생들의 미숙한 구호 하나에 교육기관이 징벌의 칼을 들이대는 사회가 정상인가. 스포츠 현장은 학생들이 땀 흘리고 경쟁하며 성장하는 공간이다. 그곳마저 정치적 감시와 처벌의 무대로 변한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치 보는 법을 배울 것이고,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잘못된 표현은 교육과 토론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와 다르다. 정치권은 논란을 키우고, 교육 현장은 징계로 응답하며, 여론은 학생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행태다. 자유로운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금기를 주입하고, 공동체적 성찰이 아니라 집단적 낙인을 앞세우는 방식은 전체주의적 발상에 가깝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을 정치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적 비극은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교육은 정치권의 하청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5·18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그것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태부터 중단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크나큰 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국론은 갈라지고, 정치적 증오는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으며, 교육 현장조차 정치적 압력 앞에서 중심을 잃고 있다. 학생들의 응원 구호 하나를 두고 사회 전체가 들끓는 동안, 정작 어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학생들을 탓하기 전에 정치권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교육 현장도 정치적 여론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잘못은 바로잡되,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역사교육은 있어야 하지만 정치적 낙인은 없어야 한다. 반성은 학생들만의 몫이 아니다. 이 사태를 만든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야말로 먼저 고개 숙여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