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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당·정·군 연합회의를 열고 인민군 총정치국 고위 간부의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의를 “엄격한 국법과 강건한 규율로 혁명의 승리적 진군을 담보하기 위한 정치투쟁”으로 선전했지만, 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법치에 따른 반부패 조치라기보다 군과 당 간부들을 향한 대대적인 충성 점검과 공포통치 강화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통신은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박희철과 관련자들이 조직권과 인사권을 악용해 뇌물을 받고, 국가 자금과 물자·주택을 빼돌렸으며, 측근과 아첨꾼을 주요 직책에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최고재판소는 이들에게 형벌을 선고했지만, 구체적인 형량과 재판 절차, 피고인의 변론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당국은 범죄가 “객관적인 증거로 명백히 증명됐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뿐, 어떤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했고 피고인들에게 충분한 방어권이 보장됐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수사와 기소, 재판이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론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체제에서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법 절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김정은이 직접 사건의 성격을 “정치적 범죄”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부정부패 자체보다 “당의 규율건설 노선에 도전했다”는 정치적 판단이 앞세워졌다. 이는 북한의 법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수호하는 통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신은 박희철이 측근을 요직에 배치해 “당의 유일적 영군체계 확립에 저해를 주었다”고 비난했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대한 죄는 국민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군 기강을 무너뜨린 행위가 아니라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지배체계를 위협했다는 데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부정부패의 원인을 일부 간부들의 개인적 탐욕과 도덕적 타락으로만 돌리는 것도 본질을 호도하는 행태다. 모든 권력과 자원, 인사권이 노동당과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된 북한에서는 공식적인 감시기관과 독립언론, 시민사회의 견제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이 법과 원칙보다 앞서는 구조에서는 매관매직과 뇌물, 특권과 전횡이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체제의 필연적 산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만성적인 식량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군과 당의 고위 간부들이 국가 물자와 주택을 사적으로 차지하고 호화생활을 누렸다는 북한 당국의 발표는 스스로 체제 내부의 심각한 특권구조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주민들이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군과 당의 특권층이 어떻게 막대한 자원을 장악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 체제에서 반복돼온 전형적인 간부 숙청 방식과도 닮아 있다. 특정 인물을 갑자기 반당·반사회주의·반인민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공개회의에서 죄상을 열거한 뒤 최고지도자가 정치적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개 단죄는 해당 인물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정·군 전체 간부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경고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통해 “부정부패 오염분자들이 배겨낼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립적인 감사와 사법제도, 언론의 감시, 주민의 알 권리가 봉쇄된 체제에서 벌어지는 반부패 투쟁은 언제든 권력투쟁과 숙청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지도자의 측근이거나 정치적으로 필요한 인물의 부패는 묵인되고, 충성심이 의심되거나 권력구도에서 밀려난 인물의 부패만 선택적으로 처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반부패는 공개적인 정치재판이나 지도자의 격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권력기관에 대한 독립적 감시, 투명한 예산 집행, 공정한 재판, 언론의 자유와 시민의 비판권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러한 제도적 개혁 대신 더 강한 규율과 처벌, 더 철저한 사상통제와 충성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정은이 선언한 ‘강건한 규율’은 주민의 권리를 지키는 법치가 아니라 정권을 지키기 위한 통제의 언어다. 이번 당·정·군 연합회의는 북한의 부패가 일부 간부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이 한 사람과 한 정당에 독점된 체제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부패한 간부 몇 명을 공개적으로 단죄한다고 해서 부패를 낳는 토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 당국이 최고지도자의 절대권력과 특권층 중심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둔 채 처벌과 숙청만을 반복한다면, ‘반부패 투쟁’은 부패 척결이 아니라 또 다른 공포정치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