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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노동신문이 과학자와 교육자들에게 이른바 ‘전승세대의 정신’을 계승해 국가발전과 지방공업 현대화에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기사에서 강조되는 것은 연구의 자율성이나 과학적 성과의 객관적 검증이 아니라 노동당에 대한 충성과 희생, 정치적 결의다.
노동신문은 「영웅인민의 기상으로 내 조국을 더욱 강대하고 번영하게 하자」는 제목 아래 평양경공업대학과 국가과학원 관계자들의 글을 소개했다. 이들은 지방공업공장의 생산공정 설계, 도료 국산화, 나노시멘트 첨가제 개발, 식물과 작물 품종 연구 등을 자신들의 주요 성과로 내세웠다.
표면적으로는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연구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산량, 품질 수준, 경제적 효과, 적용 공장의 가동률, 주민생활 개선 정도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많은 성과’, ‘큰걸음’, ‘은을 내고 있다’는 식의 추상적인 표현만 반복될 뿐이다.
특히 노동신문은 과학연구를 전쟁과 희생의 언어로 포장했다. 젊은 연구자에게 자신이 전승세대처럼 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고, 연구 활동을 ‘두뇌전’, ‘창조전’, ‘육탄’의 정신과 연결했다. 과학자가 가져야 할 비판적 사고와 자유로운 탐구정신 대신 전쟁세대에 대한 부채의식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연구 동력으로 강요하는 셈이다.
과학은 권력자의 구상을 무조건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존 정책의 오류를 검증하고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며, 자료와 실험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이 과학의 본질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과학자는 노동당의 정책을 검토하거나 비판하는 주체가 아니라 ‘당의 구상을 받드는 초석’으로 규정된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기술도 마찬가지다. 노동신문은 세계적 발전추세에 맞게 인공지능을 지방공업공장에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과 통신망, 반도체와 컴퓨터 장비, 데이터 구축, 전문인력 양성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기반시설과 투자계획 없는 ‘첨단화’ 구호는 과학정책이라기보다 체제의 현대성을 과시하기 위한 선전문구에 가깝다.
지방공업공장과 온실농장, 건설현장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일 자체는 주민생활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장이 얼마나 많이 건설됐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안정적으로 가동되는지, 원료와 전력이 공급되는지, 생산품이 주민들에게 정상적으로 제공되는지다.
북한의 선전은 시설의 준공과 연구과제 수행을 곧바로 ‘인민생활 향상’으로 연결하지만, 생산과 유통, 유지·보수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다. 성과를 검증할 통계와 외부 평가가 차단된 상태에서 당국의 발표만으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더욱이 과학자를 끊임없이 희생과 헌신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은 열악한 연구환경과 부족한 보상을 개인의 정신력으로 메우려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의문이 아니라 안정적인 연구비, 충분한 장비와 자료, 국제학술 교류,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문화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과학기술 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을 바란다면 과학자를 선전의 전위대로 내몰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질문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성과 역시 당에 ‘기쁨을 드렸는가’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선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전쟁의 기억을 끊임없이 소환해 오늘의 과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체제는 미래를 향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과학마저 충성과 결의의 언어에 가두는 한, 노동신문이 말하는 ‘강대하고 번영하는 조국’은 검증된 현실이 아니라 반복되는 정치적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