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L. 라일리는 6월 2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에서 오늘날 미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우려스러운 추세를 지적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남성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일을 하지도 않았고 일자리를 찾지도 않았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는 분명 여러 원인이 있다.
그러나 라일리가 주장하고 니컬러스 에버스타트가 자신의 저서 『일하지 않는 남자들』에서 입증했듯이, 냉엄한 사실은 이렇다. “남성 실업이 장기간 증가한 것은 일자리를 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그리고 이는 영적인 곤경을 드러낸다. 참혹한 환경에서 직접 육체노동을 했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1981년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에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단지 더 많이 만들거나 더 많이 버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더욱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노동은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며, 노동의 고된 어려움을 이겨 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속 이루시는 인류 구원 사업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남자들, 더 나쁘게는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거부하는 남자들은 영적으로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노동 윤리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 볼티모어 콜츠의 스플릿 엔드 레이먼드 베리에게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아니라 볼티모어 콜츠다. 그는 지난 5월 25일, 아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드래프트 20라운드에서 지명된 베리는 미국프로풋볼리그에서 성공하기는커녕 선수로 살아남는 것조차 어려웠어야 할 인물이었다. 하물며 통산 패스 리시브 기록을 세우고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에 오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극심한 근시였으며 몸놀림은 민첩했지만, 오늘날의 초고속 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들과 비교할 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았고, 만성적인 통증을 줄이기 위해 허리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다.
레이먼드 베리를 위대한 선수로 만든 것, 그리고 쿼터백 존 유나이타스와 함께 미국인들이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만든 것은 불굴의 노동 윤리였다. 두 사람은 1958년 ‘서든 데스’ 방식으로 치러진 미국프로풋볼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다. 베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노동하는 인간」에서 가르친 진리를 구현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 곧 우리가 되도록 창조된 그 사람에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베리와 유나이타스는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몇 시간씩 남아 패스 경로와 사이드라인 근처에서의 캐치 동작을 연습했다. 베리가 사이드라인 바로 앞에서 패스 경로를 멈춘 뒤, 몸을 지면과 평행하게 길게 뻗어 유나이타스가 정확히 던진 공을 받아 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발레와 같은 미식축구를 보는 일이었다.
레이먼드 베리는 자신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뉴욕 자이언츠와의 역사적인 챔피언 결정전을 하루 앞둔 1958년 12월 27일, 베리는 얼어붙은 양키 스타디움 경기장의 구석구석을 직접 걸어 다녔다. 다음 날 경기에서 자신의 패스 경로를 전술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지면이 비교적 부드러운 곳을 전략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처럼 철저하게 노동을 준비한 결과, 그는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기록을 세웠다. 미국프로풋볼리그에서 열세 시즌을 뛰는 동안 그가 기록한 펌블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베리는 그마저도 심판이 잘못 판정한 것이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는 욕설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것처럼, 엔드존에서 공을 땅바닥에 내던지는 세리머니도 결코 하지 않을 신사였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을 평가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했다. 베리는 한때 이른바 ‘100%의 노력’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100%를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흔히 ‘110%’를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적인 일을 해내는 순간에도 집중력은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나는 경기 영상을 몇 번이고 자세히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냉정하고 가혹하게 플레이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준 가장 높은 점수는 87점이었다.
레이먼드 베리는 또한 철저하게 올곧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의 회심 이야기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195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콜츠가 연장전 끝에 승리한 직후, 베리는 홀로 앉아 있었다. 경기 종료를 불과 1분 30초 앞두고 그와 유나이타스가 기적적인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덕분에 거둔 승리였다. 베리는 그 순간 “방금 일어난 일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독실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기독교 선수 친교회(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베리는 2002년 존 유나이타스의 장례 미사에서 연설하며 “육신을 떠나는 것은 곧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감동적으로 증언했다.
이제 성인들의 통공 안에 머물고 있는 레이먼드 베리가 일하지 않는 모든 남자를 위하여 전구해 주기를 바란다. 정직한 노동을 통하여 더욱 성장하고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될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서 빼앗기고 있거나, 스스로 그 기회를 거부하고 있는 남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등번호 82번 선수의 모범을 통하여 노동 윤리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