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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북한 ‘지방 자립’ 강조

2026-08-25 16:32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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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의 책임을 지방에 떠넘기는 자력갱생의 재포장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지방발전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다시 한번 ‘자립적 발전’을 내세웠다. 지역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스스로 활용해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제난과 중앙집권적 통제체제를 그대로 둔 채 지방에 자립을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인 지방분권이라기보다 중앙정부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책임을 지방에 전가하는 논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 매체는 25일 ‘지방정책실현의 원칙적 요구는 자립적 발전’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시·군들에서 지역의 자연지리적 잠재력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 활용하고 자체의 역량에 튼튼히 의거하여 자립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동군병원과 종합봉사소 건설 착공식 연설에서 “국가적 지도와 방조를 보장하면서 지방의 자립성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을 지방발전의 기본 방식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지역의 특성과 자원을 활용해 지역 스스로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정책처럼 보인다. 문제는 북한에서 말하는 ‘자립’이 시장경제 국가에서의 지방자치나 재정분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시·군은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결정하거나 기업 활동과 투자를 자유롭게 유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토지와 주요 생산수단, 산업정책과 자원 배분은 당과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방에만 “자체의 역량”을 강조한다면 자립이라는 표현은 결국 부족한 중앙의 재정과 물자를 지역 주민과 지방기관이 스스로 메우라는 요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이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자력갱생’ 구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당국은 국가경제 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보다 주민과 기관에 자체 해결을 주문해왔다. 공장에는 자체적인 원료 확보를, 농촌에는 증산을, 주민들에게는 각종 건설과 생산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지방발전정책 역시 이러한 기존 방식이 ‘지방 자립’이라는 표현으로 재포장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진정한 지방발전은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교통망, 의료와 교육시설, 생산설비와 자본,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투자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기업이 스스로 경제적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따른 이익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의 계획과 지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과에 대해서만 지방의 자립을 요구한다면 이는 ‘권한 없는 책임’에 불과하다.

지역별 경제적 조건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광물이나 농업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교통과 산업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갖춰진 지역과 낙후된 지역을 동일한 ‘자립’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지방 간 격차는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지역 간 격차를 조정하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 기반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 책임을 “지역의 잠재력”과 “자체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넘긴다면 지방발전정책은 복지와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정책이 아니라 지방 스스로 생존하라는 지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북한이 강조하는 “국가적 지도와 방조”라는 표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도’는 중앙이 하면서 경제적 부담과 생산 책임에서는 지방의 ‘자립’을 강조하는 구조라면, 지방은 중앙의 통제와 자체 조달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더욱이 북한의 지방발전이 주민의 실제 생활수준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공장이나 병원, 봉사시설의 준공 숫자보다 지속적인 운영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건물을 짓는 것과 시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병원에는 의료인력과 의약품이 필요하고, 공장에는 원료·전력·판매망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운영 조건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화려한 준공식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주민 생활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지방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먼저 지방에 실질적인 경제적 자율성을 부여하고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에게 희생과 자력갱생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정책의 실패를 주민의 충성심과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부족한 국가 재원을 지방의 ‘자립’이라는 이름으로 충당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발전의 핵심은 지방에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은 책임을 다하고, 지방에는 실질적인 권한을 주며, 주민에게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 반복되는 ‘자립적 발전’ 구호는 새로운 지방정책이라기보다 북한이 오랫동안 되풀이해 온 자력갱생론의 또 다른 이름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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