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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풍년을 알리는 기사라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곡식을 얼마나 거뒀으며, 지난해보다 얼마나 늘었는가. 그리고 그 성과가 주민들의 식탁에 어떻게 돌아갔는가.
노동신문의 「풍요한 가을은 어떻게 왔는가」는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않은 채, 올해 농업 성과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와 헌신으로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기사는 탈곡장에서 쏟아지는 낟알과 곡식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 행렬을 묘사하며 풍작을 선언한다. 그러나 전국 알곡 생산량과 전년 대비 증가율, 목표 달성률은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가 풍작의 규모를 판단할 핵심 자료가 빠져 있는 것이다. 현장의 활기찬 풍경은 수확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지만, 국가 전체의 농업 성과를 입증하는 통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수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사는 많은 지역과 단위에서 정보당 5톤 이상의 밀을 생산했다고 소개한다. 다만 해당 지역의 수와 재배면적, 전국 평균 수확량은 밝히지 않는다. 일부 다수확 사례가 전체 밀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없는 만큼, 이를 곧바로 전국적인 성공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관개용수를 지난해보다 열흘가량 앞당겨 공급했다는 설명 역시 실제 공급 범위와 수확량에 미친 효과가 함께 제시돼야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더 두드러지는 문제는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기사는 풍작이 “하늘덕도 땅덕도 아닌” 지도자의 은덕으로 마련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기사 안에는 비료 공급, 관개시설 보강, 농기계 확보, 재배법 개선, 병해충 방제 등 구체적인 생산 요인이 나열돼 있다.
이는 농업 성과가 여러 물질적 조건과 기술, 노동의 결합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복합적인 과정을 한 사람의 공적으로 압축하면, 어떤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냈는지 살피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린다.
농민들의 위치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사는 농업근로자를 생산의 직접적인 담당자이자 농사의 주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려주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현장에서 무엇을 개선했으며, 수확 뒤 실제로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았는지 구체적인 증언이 없다.
농민들은 주로 지도자의 은덕에 감사하고 다음 해 목표 달성을 다짐하는 집단으로 등장한다. 농사의 주인이라면 감사의 표현뿐 아니라 경험과 요구도 보도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기사에 언급된 포전담당책임제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맡은 포전에 대한 책임과 이해관계를 높였다는 설명은 생산자의 동기와 보상 구조가 농업 성과에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 분배 기준은 무엇이며, 추가 생산의 혜택은 농장원에게 얼마나 돌아갔는가. 기사는 이러한 제도의 작동 방식과 결과를 설명하기보다 사상교양과 정신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비료와 종자, 전력의 적기 공급은 생산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조치다. 실제로 공급이 개선됐다면 그 성과는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를 지도자가 베푼 특별한 은정으로만 서술하면, 공적 공급체계가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책임을 따져 묻기 어려워진다. 필요한 물자가 안정적으로 공급됐는지, 부족한 지역은 없었는지, 개선이 다음 해에도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정책 평가의 핵심이다.
풍작과 식량문제 해결도 구분해야 한다. 생산이 늘어나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주민의 식생활이 개선됐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저장·운송 과정의 손실, 수매 이후의 분배, 주민이 실제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까지 살펴야 한다. 기사는 “집안살림도 늘게 되였다”고 서술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농가 소득이나 식량 분배 자료는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료의 부재가 곧 흉작이나 정책 실패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제공된 기사만으로 실제 생산 실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공을 주장하는 보도라면 독자가 그 주장을 검증할 근거도 내놓아야 한다. 찬양의 강도가 증거의 부족을 메울 수는 없다.
‘풍요한 가을’의 가치는 지도자에게 바치는 감사의 크기로 측정되지 않는다. 농민의 노동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주민의 식탁이 나아졌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노동신문이 답해야 할 것은 누가 풍년을 선사했느냐는 질문에 앞서, 얼마나 생산했고 그 결실이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갔느냐는 질문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