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캔터베리 대주교는 프리무스 인터 파레스, 곧 “동등한 이들 가운데 첫째”로 간주되어 왔으며, 성공회 공동체의 수장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지도적 역할은 전 세계 성공회 신자들에게 역사적 일치의 중심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 성공회 내부의 변화들은, 한때 널리 “성공회 공동체”로 불렸던 이 공동체의 삶 안에서, 잉글랜드 교회가 여전히 그러한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징표 가운데 하나는, 새 캔터베리 대주교로 즉위한 사라 멀럴리의 착좌식에 42개 성공회 관구 가운데 16명의 수장이 불참한 사실이다. 그 가운데 4명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12명은 전 세계 성공회 신자의 75% 이상을 대표한다.
이들의 불참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 성공회 교회들의 친교 안에 깊은 균열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다수의 성공회 지도자들이 더 이상 캔터베리를 친교의 중심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한때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던 역사적 구조는 무의미해지게 된다.
사라 멀럴리의 캔터베리 대주교 착좌식은 저스틴 웰비의 착좌식과 현저히 달랐다. 웰비의 경우, 전 세계 성공회 교회들로부터 폭넓은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 지도자들의 감소된 참여는 성공회 공동체 내부의 분열이 확대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분열은 수십 년에 걸친 교리적 혁신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정점은 잉글랜드 교회 총회가 멀럴리가 제안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 허용 결의를 통과시킨 사건이었다.
금세기 초부터 성과 혼인에 관한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2008년 글로벌 성공회 미래회의(GAFCON)는 예루살렘 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항의하였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정통 신앙을 부정한 교회와 지도자들의 권위를 거부한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캔터베리가 더 이상 일치의 중심이 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는 최근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다. “나는 솔직히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 같은 발언은 잉글랜드 교회의 전 지도자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현재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이는 단순한 내부 의견 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회 자체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다.
중대한 전환점은 2023년에 도래하였다. 글로벌 사우스 성공회 교회 연합(GSFA)은 이른바 “재의 수요일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GSFA는 더 이상 캔터베리 대주교를 프리무스 인터 파레스이자 성공회 공동체의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역사적 전환을 의미한다. 전 세계 다수의 성공회 신자를 대표하는 교회들이 사실상 성공회 일치의 상징적 중심을 철회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뿌리는 단순히 역사적 요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성공회 공동체의 구조는 대영제국 시대에 형성되었다. 당시 잉글랜드 교회는 선교와 식민 확장을 통해 설립된 성공회 교회들을 조정하는 중심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 상황은 크게 변화하였다. 성공회의 인구 중심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로 결정적으로 이동하였다. 현재 대다수의 성공회 신자들은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서구 여러 관구가 전통적인 성공회 신앙에서 이탈함에 따라, 일치, 교회 통치, 권위에 관한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제기되고 있다. 식민지 혹은 탈식민지 상황을 위해 설계된 구조는, 지도력, 신학적 활력, 그리고 신자 수의 중심이 남반구에 위치한 오늘날의 세계 교회의 현실을 더 이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많은 글로벌 사우스 지도자들은, 단순히 캔터베리와의 역사적 연결만으로는 일치를 유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성경적 신앙과 사도적 교리 및 전통에 대한 공동의 헌신 위에 일치가 기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필요에 응답하여 GSFA는 참여 관구들 간의 신학적 일관성, 교회적 책임성, 그리고 상호 의존성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언약적 구조를 발전시켰다. 이 구조는 2019년 카이로에서 열린 글로벌 사우스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되었다. 이전의 성공회 공동체가 주로 비공식적인 유대와 친교에 의존했던 관계적 모델과 달리, 이 언약 구조는 정통 교리, 선교, 그리고 상호 책임에 대한 보다 명확한 헌신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 구조의 채택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미 14개의 성공회 관구와 여러 성공회 선교 단체들이 GSFA 언약 구조를 받아들였다. 이는 캔터베리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글로벌 사우스 교회들의 공동 신학적 헌신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세계 성공회 협력의 패턴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새로운 구조는 성공회가 세계적 운동으로서 종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일치되고 상호 의존적인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공회의 미래는 글로벌 사우스, GAFCON, 그리고 기타 정통 성공회 연합체들이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날의 상처 입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한다. 나는 다섯 명의 성공회 지도자들과 함께 참석할 예정인 “글로벌 성공회의 미래” 회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것이라 희망한다.
진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일치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