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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도꾜 아다찌지부 아야세분회를 소개한 북한식 선전 기사는 겉으로는 “따뜻한 공동체”와 “새세대의 활력”을 말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낡은 충성체계를 다음 세대로 이식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족처럼 따뜻한 분회”, “덕과 정으로 맺어진 동포동네”, “애족애국모범분회” 같은 표현은 공동체의 미덕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총련 조직의 약화를 막고 청년층을 체제 친화적 네트워크 안에 붙들어 두려는 선전 언어에 가깝다.
이번 보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야세분회가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분회” 칭호를 받았고, “우리 학교를 지키고 사랑하는 분회”로 표창되었다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애족애국”은 보편적 의미의 공동체 봉사나 건전한 시민적 연대와는 거리가 멀다.
총련이 오랜 세월 북한 정권의 해외 정치조직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수사는 실질적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 그리고 조총련 조직 유지에 대한 헌신을 미화하는 표현일 뿐이다.
기사에서 아야세분회가 코로나 시기 약 20년 만에 분회장직을 인계하고, 비교적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조직을 이끈 점을 부각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는 고령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흔들리는 총련 조직이 청년층을 전면에 내세워 재활성화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새세대의 힘”은 자생적 공동체 갱신의 상징이라기보다, 쇠락하는 친북 조직이 생존을 위해 젊은 얼굴을 앞세운 재포장 전략에 더 가깝다. 보도는 김룡덕 분회장이 “분회가 약화되면 동네에서 동포들이 떨어져나갈 수 있다는 절박감”을 가졌다고 전한다.
이 대목은 오히려 총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늘날 재일동포 사회에서 총련의 결속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 그리고 동포들이 조직 중심의 삶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실토한 셈이기 때문이다. 즉, 이 기사는 성공담이 아니라 위기의 징후를 반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공동체가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굳이 “떨어져나갈 수 있다”는 절박감을 앞세워 조직 보존을 호소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런 총련식 지역조직 활동이 단순한 친목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총련은 교육, 문화, 생활지원을 내세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노선과 정체성을 재일동포 사회에 주입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우리 학교를 지킨다”는 말 역시 표면적으로는 민족교육 수호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북한식 역사관과 정치관에 가까운 교육 틀을 유지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런 구조를 외면한 채 무조건 “애족애국”으로 포장하는 것은 사실상 사상적 동원을 미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무엇보다 비판해야 할 것은, 기사 전체가 철저히 인간적 정과 공동체적 온기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총련이라는 조직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일동포들의 삶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들의 자유로운 정체성 선택과 다양한 진로, 일본 사회 안에서의 자립과 권익 향상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식 보도는 늘 그렇듯, 개인의 삶은 조직 유지의 수단으로 환원되고, 공동체의 온기는 체제 충성의 감성적 포장지로 소비된다.
결국 아야세분회 미화 기사는 “새세대의 힘”을 찬양하는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약해지는 총련 조직을 연명시키기 위해 젊은 세대를 다시 결속망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선전문이다. 인정미와 세심한 관심을 말하지만, 그 관심의 종착점은 동포 개개인의 자유와 미래가 아니라 조직의 유지와 충성의 재생산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사람을 조직에 묶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자유롭고 더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공동체의 훈훈한 미담이 아니라, 시대착오적 친북 조직이 아직도 감성적 언어로 자신을 연장하려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혀야 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