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토요일 기획 기사인 “Saturday Essay”로 교황에 대한 장문의 프로필을 실었다.
부제—“교황 레오 14세,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서다. 시카고 출신의 이 교황은 적나라한 힘의 정치 시대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는 시작부터 의도를 드러냈다. 곧, 교황은 대통령에 맞서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하며, 레오의 발언과 행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적 분석의 프리즘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것을 놓친다. 아주 점잖게 말하더라도 그렇다.
달라이 라마를 다룬 “Saturday Essay”가 시진핑에 맞서는 존재라는 틀로 그를 조명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이 고대의 복합적인 종교 전통을 이끄는 지도자의 정신과 마음 안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겠는가? 물론 아니다.
랍비 메이르 솔로베이칙을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의 대척점으로 설정한 “Saturday Essay”를 상상해 보라. 그것이 미국 현대 정통파 유다이즘의 대표적 해설자에 대한 본질적 진실을 드러내겠는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교황 레오 14세를 “반(反)트럼프”로 틀지어 설명하는가?
도널드 트럼프는 2015년 이래 사실상 미디어 세계 전체의 공기를 빨아들여 버렸다. 그와의 관련성 없이 해석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과연 남아 있는가? 이러한 집착은 현실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교황 레오의 현실도 왜곡한다. 레오는 자신의 사명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와의 우정으로 초대하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나는 그 “Saturday Essay”의 공동 저자 가운데 한 사람과 기사 출간 전에 두 차례 길고도, 내 생각에는 생산적인 이메일 교환을 했다. 그 기자는 몇 가지 가톨릭 현안에 대해 “미국 보수 진영의 관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그에게, 일부 전통주의자들에게 나는 위험한 현대주의자로 간주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말한 뒤, 기꺼이 질문들에 답했다.
나는 그 교환 내용을 여기 다시 소개한다.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 가운데 단 한 음절도 저널 기사에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답변들은, 베드로의 사도좌에 오른 지 첫 돌을 맞이하려는 이 교황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빛을 비춰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 레오는 로마의 지지자들이 말하듯, 진보적 가톨릭 신자들과 보수적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긴장과 양극화를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까? 그는 정치와 이념이 아니라 교리와 영성에 뿌리내린 균형 잡힌 입장을 찾아냈습니까? 아니면 이런 “회복된 조화”라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레오는 본질적으로 다소 전통주의적 외양을 지닌 진보주의자입니까?
답: 교황 레오 14세는 매우 분명히 자기 자신의 사람이며, 또한 가톨릭 진리의 충만함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범주 안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저마다의 의제를 가진 여러 집단은 끊임없이 그렇게 하려 합니다. 바티칸의 통치 양식에는 확실히 정상성이 돌아왔고, 그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문: 이민 문제에 관하여, 미국 주교들은 레오의 지지와 격려 아래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일입니까? 그는 정치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한 것입니까?
답: 레오와 주교들은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도덕적 주장을 해 왔습니다. 더구나 그 상황은 행정부가 계속해서 골대를 옮기고 있는 유동적인 상황입니다. 아마도 행정부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지닌 안정적인 이민 정책을 확정하게 되면, 현실 세계의 실제적 대안들—그리고 그 각각이 지닌 도덕적 함의—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문: 외교 정책에 관하여, 레오가 대화와 중재, 다자주의와 국제법을 고수하고, “전쟁을 향한 열광”을 비난하는 것은 옳습니까? 전쟁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를 명시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런 해석이 옳습니까? 그리고 해체되어 가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에 바티칸이 기대를 거는 것이 과연 유익합니까?
답: 나는 교황 레오의 교황 재위가 전개되어 가면서, 21세기 세계 정치의 역학과, 교황청이 도덕적 증인이자 교사로서 그것들에 어떻게 가장 잘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바티칸 내부 사고를 아래로부터 다시 검토하는 작업을 그가 시작하기를 희망합니다.
문: 그러한 아래로부터의 재검토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배경을 고려할 때, 그것이 정당한 전쟁 이론 쪽으로 갈 수 있는 한 방향일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 레오가 그 문제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답: 정당한 전쟁 이론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질서의 평온”이라고 부른 가톨릭의 평화 개념에 대한 더 넓은 논의 안에서만 지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평화란 안전과 정의와 자유로 이루어진 평화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인 교황 레오는, 그러한 더 넓은 논의를 시작하고, 이어서 정당한 전쟁 전통에 대한 도덕적 성찰의 쇄신을 그 대화 안에 적절히 자리매김하도록 돕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이 성찰은, 비례적이며 식별력 있는 무력 사용이 어떻게 그 평화를 회복하거나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