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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만수대 천리마 동상 건립 65년을 맞아 또다시 “주석님의 예지와 령도”를 찬양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천리마 동상은 분명 평양의 대표적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이 동상은 만수대 언덕에 세워진 대형 기념조형물로, 1961년 4월 15일 공개되었고, 북한이 내세운 천리마운동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문제는 북한이 이 조형물을 단순한 예술작품이나 시대 기념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개인숭배와 체제 선전의 핵심 도구로 끊임없이 재가공해 왔다는 점이다.
북한의 이번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민들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했다는 식의 연출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서 예술과 문화, 기념비 건립은 주민 자율의 산물이 아니라 당의 선전 선동 체계가 통제하는 영역이다.
북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 부문은 모든 북한 주민에 대한 사상주입을 담당하며, 예술과 문화는 김씨 일가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충성을 조직하는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같은 자료는 북한 문화예술 영역에서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에 우선했고, 독창성의 여지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천리마 동상 건립을 두고 마치 인민의 뜻이 반영된 집단적 창조인 양 포장하는 것은 사실상 체제 선전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천리마 동상 그 자체가 무엇을 상징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천리마 운동은 북한이 전후 복구와 생산 증대를 위해 내세운 대중동원 정책이었고, 브리태니커는 이를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본뜬 대중동원 조치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천리마는 자유로운 번영의 상징이 아니라, 초과 달성·속도전·충성 경쟁을 미화하는 정치 동원의 상징이었다. 북한 인권백서도 천리마 운동과 각종 속도전 체계 아래에서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해졌고, 강제노동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부재했다고 지적한다.
동상이 찬양하는 것은 “영웅적 기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끝없는 동원 대상으로 취급한 체제의 논리라고 보아야 한다. 북한은 늘 이런 방식으로 현실의 빈곤과 억압을 상징의 웅장함으로 덮으려 한다.
천리마 동상은 높이 4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조형물이고, 노동자와 농민이 천리마를 탄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것은 웅대한 동상이 아니라 자유의 부재, 정치학습의 강요, 조직 생활의 의무화, 그리고 체제 충성의 일상화다.
북한 인권백서는 주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 부족을 들며, 모든 시민이 각종 조직에 가입해 집단생활과 정치교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결국 거대한 동상은 인민의 자부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위에 군림하는 체제의 시선을 시각적으로 각인하는 장치에 가깝다.
북한 선전의 상투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오늘의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우상화 체계 속에서 동상·벽화·초상화·문학·영화·기사문은 모두 같은 목적을 향해 동원된다.
HRNK 보고서는 북한 전역에 지도자 찬양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동상과 기념물, 벽화, 언론과 문화예술 전반이 김씨 일가의 개인숭배를 떠받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천리마 동상 찬양 기사 역시 예술 감상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의 신화를 재주입하는 정치문서일 뿐이다.
주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왜 아직도 자유로운 선택과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지, 왜 조형물은 넘치는데 인간의 존엄은 보장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결국 천리마 동상에 대한 북한의 미화는 동상 자체보다 체제의 불안을 더 잘 보여준다. 자신감 있는 국가는 거대한 기념비보다 시민의 자유와 삶의 질로 정당성을 입증한다. 반면 북한은 6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상을 붙들고 “주석님의 예지”를 외친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다. 체제가 아직도 과거의 신화와 우상화 없이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가장 적나라한 고백 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