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체제의 자존심도, 혁명의 구호도, 반미 선동도 국민의 삶을 살리지 못하면 결국 허망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가 2026년 1월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미국은 이달 들어 그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도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 석유·광물 부문 개방과 외자 유치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현실이 하루아침에 정상국가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적 정당성 논란도 남아 있고, 야권과 국제사회의 시선도 복잡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베네수엘라는 더 이상 폐쇄와 대결만으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긴장 일변도 노선만으로는 경제 회복도, 국가 재건도 불가능하다는 현실 앞에서 결국 노선을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란은 베네수엘라를 똑바로 봐야 한다. 이란 정권은 아직도 반미 구호, 대리전 확대, 핵 개발 집착, 혁명수비대 중심의 강경 통치로 체제를 버틸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그 끝은 더욱 가혹한 고립과 제재, 그리고 국민경제의 질식일 뿐이다.
체제 수호를 외치지만 정작 그 체제가 지키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 핵심의 생존이다. 그런 체제가 오래 버틴다고 해서 성공한 체제는 아니다. 단지 국민이 더 오래 고통받는 체제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의 최근 전환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금융질서, 외부 투자, 제도 정상화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국가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선례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베네수엘라조차 이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다면, 이란도 더 이상 예외일 수 없다.
이란이 진정 나라를 살리고 싶다면,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경제 정상화의 길로 가야 한다. 혁명수출이 아니라 국제사회 복귀를 택해야 한다. 반미 선동이 아니라 체제 전환의 용기를 보여야 한다.
이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란이 계속 저항의 깃발만 흔든다면 남는 것은 피폐해진 민생, 심화되는 국제 고립, 그리고 더 큰 충돌 위험뿐이다. 반대로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틀면, 늦었지만 재건의 문은 열릴 수 있다. 오늘의 베네수엘라는 바로 그 냉혹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국가를 살리는 길은 끝없는 대결이 아니라 질서로의 복귀다.
이란은 이제 결단해야 한다. 더 이상 다른 방도는 없다.
베네수엘라식 현실 인정과 노선 전환, 그것이 이란이 택해야 할 마지막 출구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