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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흥남비료련합기업소 혁명사적관에 전시된 보석화 《흥남의 비료생산기지》를 내세워 또다시 김씨 일가의 “믿음”과 “사랑”을 선전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기사에서 확인되는 것은 비료 생산의 객관적 성과나 농업 현장의 개선이 아니라, 산업 현장마저 수령 우상화의 전시장으로 만드는 북한식 선전의 낡은 방식이다.
북한 매체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를 “국내 굴지의 비료생산기지”라고 소개하며, 김정은이 2012년 김정일에게 바쳐졌던 보석화를 기업소에 선물로 보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일성의 현지지도, 김정일의 마지막 시기 방문, 김정은의 계승적 배려를 연결하며 이 그림의 의미를 “믿음”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비료공장의 핵심은 그림이 아니라 생산량이다. 농민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사적관의 보석화가 아니라 제때 공급되는 질소비료와 복합비료, 안정적인 원료 조달과 에너지 공급이다.
북한 주민의 식량 사정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농업 생산성이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료공장의 성과를 한 폭의 그림과 수령의 은혜로 포장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정치 선전에 가깝다.
특히 이번 보도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의 구체적 생산 실적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연간 생산량이 얼마인지, 당초 목표 대비 달성률은 어떠한지, 농촌 현장에 실제로 얼마나 공급되었는지, 생산 정상화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생산의 동음”, “숭엄한 감정”, “크나큰 믿음”,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 같은 수사만 반복했다. 이는 성과가 확실한 산업 보도라기보다, 성과 부족을 충성 서사로 덮는 전형적인 북한식 선전 문법이다.
흥남비료련합기업소는 북한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료는 식량 생산의 기본 조건이며, 비료 부족은 곧 작황 부진과 주민 생활난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기업소에 대한 보도라면 당연히 생산 설비의 현대화, 원료 확보, 에너지 효율, 제품 품질, 농촌 공급 체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산업의 실제 문제를 다루기보다 김정은의 “믿음”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과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구성했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산업 성과를 지도자의 은혜로 환원하는 구조다. 비료공장의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땀 흘려 이룬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현장의 노동, 기술 축적, 설비 개선, 과학자들의 연구 노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 체제에서는 노동자의 성과조차 수령의 “믿음” 덕분으로 포장된다. 이는 노동자를 주체적 생산자가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시혜를 받는 충성 집단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또한 “무거운 과제도 선뜻 맡겨주었다”는 표현은 북한식 계획경제의 모순을 드러낸다. 비료 생산 능력 확대와 공장 현대화는 경제적 타당성, 원료 수급, 전력 사정, 기술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이를 합리적 산업 정책이 아니라 지도자의 결심과 노동계급의 충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처럼 묘사한다. 이런 방식은 실패의 책임을 체제나 정책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북한이 정말 흥남비료련합기업소를 자랑하고 싶다면 혁명사적관의 보석화가 아니라 농민들이 체감하는 비료 공급 실적을 제시해야 한다. 비료가 제때 공급되어 식량 생산이 늘었는지, 농촌 주민의 부담이 줄었는지, 생산 공정의 현대화가 실질적 효율로 이어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주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외면한 채, 또다시 김정은의 “믿음”을 찬양하는 데 지면을 소비했다.
결국 이번 보도는 흥남비료의 성과를 말하는 기사라기보다, 비료난과 농업난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정치 선전물이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보석화가 아니라 먹을거리이며,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우상화 교육이 아니라 안전한 작업 환경과 정당한 보상이다.
공장의 벽에 걸린 그림 한 폭으로 산업의 현실을 덮을 수는 없다. 비료 생산기지가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시설이라면, 그 중심에는 수령의 초상과 “믿음”이 아니라 주민의 삶과 농민의 생존이 있어야 한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