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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감옥의 높은 담장과 차가운 철창은 사람의 육신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를 향해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까지 가둘 수는 없었다.
최근 공개된 영상 속 이란의 반체제 사형수 6명은 처형을 앞둔 절망의 자리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울부짖지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대신 함께 노래했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절규였고, 절규라기보다 인간 존엄의 마지막 선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영상은 이란의 악명 높은 게젤 헤사르 교도소에서 촬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형을 앞둔 6명의 남성이 약 3분 동안 함께 저항가를 불렀고, “폭군의 왕좌는 무너질 것”이라는 취지의 가사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영상은 지난 2월 말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 인권운동가를 통해 외부에 공개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는 아직 그 영상이 어떤 경위로 촬영되었는지, 삼엄한 감시가 작동하는 이란 감옥 안에서 어떻게 외부로 전달될 수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들이 단순한 ‘죄수’가 아니라 양심과 신념을 가진 인간임을 세계 앞에 증언했다는 사실이다. 독재 권력은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합창은 오히려 독재의 법정에 도덕적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단지 여섯 사람의 마지막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받는 이란 국민 전체의 숨죽인 함성이었다. 거리에서 끌려간 청년들, 히잡 강제와 폭력에 저항한 여성들, 생계난과 정치 탄압 속에서도 자유를 꿈꾸는 시민들, 감옥 안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양심수들의 목소리가 그 합창 안에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작별가'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게 건네는 '유언'이었다.
독재는 언제나 죽음을 통해 공포를 심으려 한다. 그러나 역사는 수없이 증명했다. 폭압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기억이다. 죽은 자의 이름이 불리고, 그 마지막 말이 기록되고, 그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을 때 독재의 공포정치는 균열을 일으킨다. 이란 정권이 철창과 교수대로 입을 막으려 했던 이들의 노래가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은, 바로 그 기억의 힘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들의 죽음을 단순한 해외 뉴스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자유와 인권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가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오늘 이란의 감옥에서 벌어진 일이 내일 다른 독재국가의 감옥에서, 또 다른 억압받는 민족의 땅에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침묵은 폭정의 공범이 되고, 무관심은 억울한 죽음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된다.
국제사회는 이들의 마지막 합창에 응답해야 한다. 이란 정권의 정치적 처형과 고문, 불공정 재판, 반체제 인사 탄압에 대해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권단체들은 희생자들의 이름과 재판 과정, 구금 실태를 끝까지 추적해야 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란 국민의 자유를 향한 투쟁을 외교적 수사에만 맡겨두지 말아야 한다. 보도에 거론된 사형수들의 이름과 혐의, 고문 의혹 등은 국제적 검증과 기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그들의 명복을 빈다. 또한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이란의 거리에서 더 이상 공포가 아니라 자유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오늘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노래한 이들의 이름은 가장 먼저 기억될 것이다.
그 마지막 합창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이란 국민과 세계의 양심이 이어 불러야 할 '자유의 노래'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