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사전투표제는 ‘투표 편의’라는 명분 아래 빠르게 자리 잡았다. 바쁜 유권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투표율을 높이며, 선거 참여의 문턱을 낮춘다는 설명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선거는 단순한 참여 행위가 아니다. 선거는 후보자와 정당, 정책과 도덕성, 지역 현안과 국가적 쟁점에 대한 판단이 집약되는 최종적 정치 행위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기 전에 이미 행사된 표가 과연 마지막 순간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가.
사전투표의 가장 큰 문제는 선거일 이전에 민심의 상당 부분을 미리 고정시킨다는 데 있다. 유권자의 판단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변할 수 있다. 후보자의 말 한마디, 토론회에서 드러난 정책 역량, 막판 검증 과정에서 밝혀지는 도덕성 문제,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 변화가 투표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거운동의 마지막 며칠은 결코 형식적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간이야말로 후보자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유권자의 최종 판단이 완성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사전투표는 이 중요한 시간을 투표 판단에서 사실상 제거한다. 이미 투표를 마친 유권자에게 뒤늦게 밝혀진 후보 검증 자료나 정책 논쟁은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후보자의 중대한 흠결이 선거일 직전에 드러나도, 사전투표자는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
반대로 막판 토론과 검증을 통해 새롭게 평가받아야 할 후보의 장점도 사전투표자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이처럼 사전투표는 유권자에게 ‘덜 알려진 상태에서의 선택’을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전투표자와 선거일 투표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생긴다는 점이다. 선거일에 투표하는 유권자는 선거운동 전 과정을 지켜본 뒤 최종 판단을 내린다. 반면 사전투표자는 선거운동의 일부만 경험한 상태에서 표를 행사한다.
두 유권자의 한 표는 법적으로 동일하지만, 그 표가 형성되는 정보 환경은 동일하지 않다. 민주주의에서 평등한 한 표가 중요한 만큼, 그 한 표가 가능한 한 동등한 정보 조건에서 행사되는지도 중요하다.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도 사전투표일과 본투표일 사이의 간극이 후보자와 유권자 간 상호작용을 위축시키고, 사전투표자와 선거일 투표자 사이에 정보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의혹 제기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본질적 문제다.
선거운동 기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유권자가 판단할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선거운동이 끝나기도 전에 대규모 투표가 이뤄진다면, 선거운동 기간의 의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사전투표가 필요한 유권자가 있다. 직장, 건강, 이동, 해외 체류, 긴급한 사정 등으로 선거일 투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별도의 투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 보완 장치가 사실상 또 하나의 본투표처럼 확대되는 순간, 문제는 달라진다. 사전투표가 편의 제도를 넘어 선거 결과의 상당 부분을 미리 결정하는 구조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투표율 제고 장치가 아니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많이 찍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찍는 것이다.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한 지표일 수 있지만, 투표율 자체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정보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조기에 굳어진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면, 그것은 편리한 선거일 수는 있어도 신중한 선거라고 말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숙고 위에 세워져야 한다.
사전투표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투표 참여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의 한 표가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후보자 검증과 정책 토론, 지역 현안 논의가 끝까지 유권자 판단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일 이전에 이미 민심이 굳어지고, 마지막 진실이 드러나도 표심을 바꿀 수 없는 구조라면 그 제도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먼저 찍은 표는 마지막 진실을 반영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전투표제라면, 우리는 투표 편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민주주의의 빈틈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선거는 편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선거는 유권자가 끝까지 보고, 듣고, 판단한 뒤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 리베르타임즈는 사전투표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해부하는 특별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특별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