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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혁 4인방- 왼쪽부터 장칭,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왕훙원 |
문화대혁명 10년의 흐름에서 1971년 9월 13일 린뱌오 사건은 결정적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이자 국방부장이었던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후계자로까지 불렸지만, 공식 발표에 따르면 탈출 도중 몽골 지역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중국 사회 내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마오의 가장 가까운 후계자로 선전되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반역자’가 되자, 많은 중국인은 비로소 문화대혁명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린뱌오 사건 이전까지 일반 대중은 문화대혁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모든 정치투쟁은 ‘마오 주석의 혁명노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고, 반대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곧 반혁명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린뱌오의 몰락은 “누가 진짜 혁명가인가”라는 질문을 중국 사회에 던졌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종말을 향해 갔다. 같은 해 10월 화궈펑과 예젠잉 등은 장칭을 비롯한 ‘4인방’을 체포했다. 공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정한 반성과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1981년 중국공산당은 《건국 이래 당의 여러 역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고, 문화대혁명을 “지도자의 잘못으로 발동되고 반혁명 집단에 의해 이용된” 10년 내란으로 규정했다. 이 결의는 문화대혁명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당과 국가, 인민에게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온 사건이었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의 공식 평가는 문화대혁명의 책임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의 근원을 체제 자체가 아니라 ‘지도자의 오류’와 ‘반혁명 집단의 이용’으로 제한했다. 다시 말해 문화대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일당독재, 사상통제, 언론통제, 법치 부재, 지도자 숭배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다.
이 점에서 문화대혁명은 중국 현대사의 과거 사건인 동시에 현재적 문제다. 당시의 폭력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문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고, 당이 진실의 기준을 정하며, 개인의 양심과 기억이 검열의 대상이 되는 구조는 문화대혁명 이후에도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다.
중국 독립 작가 왕지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핵심은 분명하다. 문화대혁명식 통치가 언제나 홍위병의 완장과 거리의 폭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더 세련된 검열로, 때로는 인터넷 통제로, 때로는 역사 논쟁의 봉쇄로, 때로는 국가주의적 동원으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희생자 개인의 기억, 지방에서 벌어진 학살과 무장투쟁, 지식인 박해, 가족 해체, 종교와 전통문화 파괴의 구체적 실상은 여전히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기념관과 공개 토론, 국가적 참회가 없는 사회에서 역사는 언제든 다시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의 가장 깊은 상처는 사망자 수나 파괴된 문화재의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상처는 인간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 이웃과 이웃 사이에 고발과 감시가 들어섰다. 한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졌고, 진실보다 충성이, 양심보다 생존이 앞서는 시대가 열렸다.
문화대혁명은 또한 법치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법이 정치권력의 하위 도구가 될 때,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오늘의 충신은 내일의 반역자가 될 수 있고, 어제의 혁명가는 오늘의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다. 린뱌오의 몰락이 바로 그 상징이었다.
문화대혁명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중국의 과거가 아니다. 전체주의적 정치운동은 언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먼저 적을 만든다. 그다음 의심을 선동한다. 법과 절차를 낡은 것으로 몰아붙인다. 청년과 대중을 동원한다. 지식인과 종교, 언론과 전통을 공격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 전체를 충성 경쟁의 장으로 바꾼다.
문화대혁명은 중국만의 특수한 사건이었지만, 그 교훈은 보편적이다. 어떤 사회든 국가권력이 진실을 독점하고, 지도자를 비판할 수 없으며, 법보다 이념이 앞서고, 시민이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드는 순간 문화대혁명의 그림자는 되살아난다.
60년이 지난 지금 문화대혁명을 기억하는 일은 단지 과거의 비극을 애도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인간을 삼키지 못하게 하는 일이며, 이념이 양심을 짓밟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기억까지 통제하려 할 때, 역사는 다시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의 진정한 종식은 1976년 10월의 권력교체나 1981년의 공식 결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희생자의 이름을 회복하고, 침묵당한 증언을 기록하며, 국가폭력의 구조를 정직하게 직시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중국이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한, 문화대혁명은 박물관 속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떠도는 정치적 망령으로 남을 것이다. <끝>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