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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국민은 웃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자신의 의원사무실에서 빈컵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스퍽 아웃’을 외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저급한 정치 코미디였다.
공적 책임을 짊어진 선량의 모습이라기보다, 관심을 얻기 위해 억지 퍼포먼스를 벌이는 철없는 장난꾼의 모습에 가까웠다. 관련 보도에서도 이른바 ‘보이콧’ 퍼포먼스가 역풍을 맞고 있다는 점이 전해졌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세비를 받고,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법을 만들며, 국가 운영을 감시하라고 보내 놓은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보여준 것이 고작 빈컵 투척과 구호 놀이, 인증샷 정치라면 이것은 단순한 헤프닝이 아니라 국민을 우습게 보는 작태다.
정치적 의사표현은 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비판은 거리의 즉흥 구호와 달라야 한다. 근거가 있어야 하고, 품격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공익적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분노를 놀이처럼 치부하고, 빈컵을 던지며 마치 대단한 저항이라도 하는 양 연출하는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아니, 소도 웃다가 고개를 저을 일이다. 국민은 고물가와 민생 불안, 안보 위기, 청년 일자리, 자영업자의 생존 문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의원실 안에서 컵이나 던지고, 카메라 앞에서 구호나 외치며, 자신들의 정치적 선명성을 과시하고 있다면 국민은 무엇을 보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더 기막힌 것은 이런 행태가 마치 ‘용기 있는 행동’인 것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얄팍한 퍼포먼스 경쟁장이 되었는가. 국회는 법률과 예산과 국가 미래를 논하는 곳이지, 유행어와 인증샷과 챌린지로 박수를 구걸하는 무대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컵 던지는 의원이 아니라, 법안을 읽는 의원이다. 구호를 외치는 의원이 아니라, 현장의 고통을 해결하는 의원이다. 보이콧 인증샷을 찍는 의원이 아니라, 국민 앞에 책임 있게 설명하는 의원이다.
국민 수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의 이런 유치한 몸짓에 감동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진짜 일을 하는지, 누가 카메라 앞에서만 분주한지, 누가 민생을 걱정하는지, 누가 자기 진영의 박수에만 취해 있는지를 알고 있다. 국민을 선동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치인은 결국 국민의 냉소와 조롱 앞에 설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의원이 특정 기업을 향해 감정적 보이콧을 선동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국회의원은 시장 질서를 존중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와 소비자의 선택권을 함께 고려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공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대중적 분노를 부추기고, 이를 놀이처럼 확산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겁박이다. 견제와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기업을 희화화하고 공격하는 행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성숙한 정치와 거리가 멀다.
정치는 진지해야 한다. 진지하다는 말은 딱딱하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다루는 일에는 최소한의 책임감과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웃음거리도 정도가 있다. 국회의원이 국민 앞에서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감당하고, 그 추태가 대한민국 국회의 수준으로 비치는 순간, 문제는 개인의 해프닝을 넘어선다.
국민은 더 이상 이런 정치 쇼에 속지 않는다. 보이콧 챌린지가 아니라 민생 챌린지를 하라. 빈컵을 던질 것이 아니라 빈 지갑을 들여다보라. 카메라 앞에서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성과를 내라. 국회의원이라면 적어도 국회의원답게 행동하라.
지나가는 소도 웃겠다는 말이 있다. 지금 국민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즐거움의 웃음이 아니다. 실소이고, 조롱이며, 깊은 불신의 표현이다. 정치가 스스로 품격을 버리면 국민은 정치 전체를 우습게 본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이런 한심한 선량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