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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가 평양시 순안구역의 면모가 “한 해 사이에 일신되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수십 리 구간의 하천 정리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끝냈고, 다층 살림집과 공공건물, 봉사시설 개건보수, 문화회관 개건, 공원 조성, 자전거길 포장, 가로수와 건물 불장식까지 추진했다는 내용이다.
겉으로만 보면 지역 정비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성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 매체가 강조한 핵심은 주민 편의나 행정 계획의 합리성이 아니었다. 기사 전면에 내세운 문구는 “대중이 사상적으로 발동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구호였다.
이는 결국 도시 정비 사업마저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사상 동원과 충성 경쟁의 결과물로 포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여 일 만에 끝낸 ‘어벌찬 과제’, 과연 정상적인 행정인가
신보는 순안구역에서 “아름찬 목표”를 20여 일 사이에 해냈다고 자랑했다. 수십 동의 건물 개보수와 공공시설 정비, 조명 설치, 공원 조성, 도로 포장까지 20여 일 안에 추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도시 행정이라면 이런 사업은 안전성 검토, 예산 확보, 자재 조달, 인력 운용, 주민 의견 수렴, 사후 관리계획 등이 함께 따라야 한다. 건물 보수와 하천 정리, 도로 포장은 단순한 보여주기 공사가 아니라 주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사업이다.
그럼에도 북한 매체는 공사 품질, 안전 기준, 예산 출처, 주민 부담, 노동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기적을 낳는 어머니는 대중의 앙양된 정신력”이라는 정치 구호만 반복했다.
이는 행정의 성과를 제도와 책임이 아니라 주민 동원과 충성심으로 설명하려는 전형적인 북한식 선전 방식이다.
주민 생활 개선인가, 충성 과시용 전시행정인가
순안구역 정비 사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시적인 보여주기사업”이라는 표현이다. 북한은 지역 정비를 주민 복지 차원이 아니라 상부에 보여주기 위한 모범 사례로 만들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실제로 얼마나 편리해졌는가가 아니라, 당 조직이 얼마나 빠르게 동원하고 얼마나 화려하게 성과를 만들어냈는가이다.
건물과 가로수에 불장식을 하고, 짧은 기간에 공원과 자전거길을 조성했다는 선전도 마찬가지다. 전력난과 식량난, 생필품 부족이 반복되는 북한 현실에서 불장식은 과연 주민 생활의 우선순위인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밤거리의 장식 조명보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 안전한 주거, 깨끗한 식수, 충분한 식량, 자유로운 생계활동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는 주민의 실제 필요보다 체제 선전 효과를 우선한다. 순안구역의 변화 역시 주민 삶의 질 개선이라기보다, 당 책임비서와 지역 간부들이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시행정의 성격이 짙다.
“사상적으로 발동”이라는 말 속에 숨은 강제성
신보는 이번 사업을 “대중의 정신력”으로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대중의 사상적 발동’이라는 말은 결코 순수한 자발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조직별 동원, 노력 지원, 충성 경쟁, 정치적 압박을 동반한다.
주민들은 각종 건설과 정비 사업에 동원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 대가가 충분히 지급되는지, 생업 손실은 보상되는지, 거부할 자유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북한 매체가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조건이 어려워도 못해낼 일이 없다’는 구호는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예산과 장비, 자재 부족을 주민의 정신력으로 메우라는 요구로 변질되기 쉽다. 행정 실패와 경제난의 부담을 다시 주민에게 떠넘기면서, 이를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김정은 찬양으로 귀결되는 지역 개발 선전
이번 보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김정은의 “가르치심”을 실천한 결과라는 찬양으로 귀결된다. 유철민 구역당책임비서의 결심도 결국 김정은의 지시와 교시를 신조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식이다.
북한의 모든 지역 개발 선전은 이처럼 주민의 필요에서 출발하지 않고 최고지도자 찬양으로 끝난다. 행정의 성과도, 주민의 노력도, 지역의 변화도 모두 지도자의 은덕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지방자치도, 주민 참여도, 공공행정도 아니다. 중앙 권력에 대한 충성 과시 체계일 뿐이다.
순안구역의 변화가 진정한 지역 발전이라면 북한 당국은 먼저 주민들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노동은 어떻게 보상되었는지, 공사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보장되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그런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대중이 사상적으로 발동되었다”는 구호만 있을 뿐이다.
진짜 발전은 구호가 아니라 주민의 자유와 권리에서 시작된다
지역의 면모를 바꾸는 일은 필요하다. 하천을 정비하고, 낡은 건물을 보수하고, 도로와 공원을 만드는 일도 주민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주민의 자유로운 참여와 정당한 보상, 안전한 공사, 투명한 예산, 실제 생활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개발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동원이고, 또 하나의 선전이며, 또 하나의 충성 경쟁일 뿐이다.
순안구역의 사례는 북한 체제가 여전히 주민을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상적으로 발동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구호는 체제 입장에서는 자랑일지 모르나, 주민 입장에서는 쉬지 못하고 동원되어야 하는 현실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북한이 정말 지역의 면모를 일신하고 싶다면, 먼저 주민의 삶을 선전의 도구로 삼는 관행부터 끝내야 한다. 도시의 불장식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밥상이고, 보여주기 공사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권리이며, 충성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삶이다.
순안구역의 변화가 진정한 발전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체제 선전인지 묻는 기준은 분명하다. 그 변화가 김정은을 빛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주민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북한 매체의 보도는 안타깝게도 그 답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