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제 막 건국 250주년을 기념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용하지만 중대한 혼동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서로 형제처럼, 곧 자유가 폭정을 타도한 하나의 이야기 속 두 장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두 혁명은 같은 어휘를 사용했지만, 동일한 토대 위에 서 있지는 않았다.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맞은 지금, 역사상 가장 특별한 나라를 세운 것이 과연 어느 혁명이었는지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회의론자들은 두 혁명이 모두 자연권과 사회계약이라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라파예트가 요크타운에서 싸운 뒤 그곳에서 배운 교훈을 프랑스로 가져갔으며, 미국이 왕정과 국교회 체제에서 결별한 것 자체도 급진적인 일이었다고 지적할 것이다. 이는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어휘를 사용했다는 것이 동일한 토대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혁명가들이 어떤 단어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권리의 기원이 어디에 있다고 믿었느냐이다.
미국의 1776년 혁명은 “계약의 혁명”이었다. 모든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독립선언문의 주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다. 권리는 국가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정부보다 앞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실험은 정부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었다. 만일 권리가 국가가 베푸는 선물이라면, 국가는 언제든 그 권리의 창조자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그것을 매장하는 장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과 결별하고 국교회 체제를 폐지한 미국혁명의 급진성조차도 특정한 제도적 질서에 대한 반란이었을 뿐, 인간의 의지 위에 존재하는 초월적 도덕 질서 자체에 대한 반란은 아니었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왕좌를 철거했지만, 하느님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1789년 혁명은 이 둘을 모두 무너뜨렸다. 라파예트가 추구했던 입헌군주제의 순간은 분명 실제로 존재했지만, 그것은 끝내 혁명의 흐름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가 시작하는 데 일조한 혁명은 불과 4년 만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거쳐, 노트르담 대성당에 ‘이성 숭배’를 왕좌에 앉히고, 마침내 공포정치로 치달았다.
이러한 궤적은 1789년의 논리를 배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논리를 집행한 것이었다. 권리의 토대가 국가 위에 계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일반의지’로 옮겨질 때, 일반의지는 무한히 늘어나고 변형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든 다른 어떤 혁명가든 그것을 손에 쥐게 되면, 그 일반의지는 무한히 치명적인 것이 된다. 하느님과 인간 생명의 존엄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모든 대중 정치운동은 언제나 이러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미국이 앞으로 맞이할 250년 동안 결코 흐릿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질서는 특정한 인간관 위에 세워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존재인 동시에 죄인이다. 인간은 유토피아적 기획이 요구하는 완전한 덕을 실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어떤 정부나 인간 행위자도 정당하게 박탈할 수 없는 존엄과 쇄신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립선언문은 쇄신을 촉구하고, 헌법은 견제와 균형, 그리고 연방주의를 제도 안에 심어 놓았다. 반면 프랑스혁명의 전통과 그로부터 태어난 사회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전혀 다른 인간관에 기초한다. 그 인간관에서 인간은 무한히 변형될 수 있는 존재이며, 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 문제가 아니라 불의한 체제의 구조적 결함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국가는 인간과 사회를 모두 새롭게 주조하는 데 적합한 도구로 간주된다.
이러한 계보는 희화화가 아니다. 혁명적 좌파 스스로가 자신의 전통으로 주장해 온 계보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789년의 그늘 아래에서 공개적으로 글을 썼으며, 프랑스혁명을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한 필수적이지만 미완성된 첫 번째 초안으로 보았다. 레닌은 자코뱅파를 혁명적 규율의 본보기로 연구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체제’, ‘구조’, ‘형평성’이라는 어휘가 바로 그 전통에서 내려왔다고 지적하는 것은 모든 개혁가를 자코뱅주의자로 몰아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확히 관찰하는 것이다. 미국의 활동가들이 권리를 공동체가 현재 원하는 것으로 규정하거나, 어떤 제도가 단지 혁명의 심판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잃었다고 여길 때, 그들은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1776년의 전통이 아니라 1789년의 파괴적 혁명 전통에 따라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미국이 1776년의 이상을 완전하게 실천했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분명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인간을 재산으로 취급했던 노예제는 건국 시대가 스스로 선언한 신조를 가장 심각하게 배반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배반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는 1776년의 틀 밖이 아니라 그 틀 안에서 발견되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과 이후의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옛 혁명을 고발하기 위해 새로운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립선언문 자체의 논리, 곧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신 창조주께 끊임없이 호소했다. 그 논리를 통해 국가가 저지른 죄를 고발하고, 국가를 회개로 이끌었다.
유대교-그리스도교적 토대 위에 이루어진 건국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건국자들 자신까지도 심판할 수 있을 만큼 확고한 기준을 제공한다. 1789년의 전제는 그러한 고정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직 그때그때 혁명재판소를 장악한 자가 내리는 변덕스러운 판결만을 제공할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라파예트를 삼켰고, 뒤이어 지롱드파를 삼켰으며, 마침내 로베스피에르 자신까지 삼켜 버렸다.
미국이 앞으로의 250년을 준비하면서 내려야 할 선택은 진보와 반동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건국 원리와 두 현실 사이의 선택이다.
하나는 권리의 근원을 창조주께 두고, 그 권리를 창조주의 모상을 지닌 인간 존재 안에 새겨 넣는다. 그러한 권리는 자명하고 보편적이며 국가의 손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권리의 근원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단의 의지에 둔다. 그러한 권리는 유동적이고 당파적이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자비에 맡겨진다.
첫 번째 원리는 오래도록 존속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아 왔으며, 여전히 자국민이 아닌 수십억 명의 충성을 이끌어 내는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두 번째 원리는 프랑스에 10년에 걸친 공포를 안겨 주었고, 나폴레옹의 권위주의에 자리를 내주었으며, 수많은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후손들을 낳는 씨앗을 뿌렸다.
미국의 다음 250년은 지금까지 견디어 왔으며,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약속을 계속 떠받치고 있는 바로 그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