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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재해 대책은 정치사업”

2026-07-13 17:08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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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빈틈없는 대비’ 선전.. 낡은 기반시설과 중앙권력의 책임 부재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기록적인 폭염과 홍수, 가뭄 등 재해성 이상기후에 대비하고 있다며 전국적인 피해방지대책 수립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매체가 내세운 대책은 구체적인 시설 투자나 제도 개선보다는 간부와 주민의 경각심, 비상동원 태세,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데 집중돼 있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국가 기반시설을 개선하기보다 주민에게 더 많은 책임과 희생을 떠넘기는 북한식 재난 대응의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3일 북한 각 지역과 단위들이 올해 기록적인 무더위와 큰물, 가뭄 등 극심한 기후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예견하고 피해방지대책과 위기대응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보는 재해방지대책을 “단순한 경제실무적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생명과 국가 재산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에서 재난 대응조차 행정과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충성도와 간부 평가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연재해 대응은 정확한 기상정보와 하천 관리, 제방 보강, 배수시설 확충, 전력망 보호, 안전한 주택 건설, 구조장비 확보 등 전문성과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주민들의 위기대응의식을 높이고 재해 유형별 행동질서를 교육하며 비상동원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재해 발생의 책임을 취약한 국가 시스템보다 현장 간부와 주민의 태도에서 찾으려는 북한 당국의 오랜 통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제방이 무너지거나 주택이 침수되고 농경지가 유실되더라도 구조적 원인을 따지기보다는 “무책임”, “요령주의”, “안일해이”와 같은 정치적 표현을 동원해 지방 간부를 질책하는 방식이다.

‘구호물자 비축’ 강조하지만 실제 확보 수준은 공개하지 않아

조선신보는 북한 각 지역이 구조수단과 복구용 물자, 구호물자의 비축 상태를 점검하고 부족한 물자를 보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어느 지역에 어떤 물자가 얼마나 확보됐는지, 구조인력과 장비가 어느 수준으로 배치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교체할 것은 교체하고 보충할 것은 시급히 보충한다”는 식의 표현은 북한 매체가 각종 경제·재난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선언적 문구다. 문제는 지방기관들이 중앙의 지시를 이행할 충분한 예산과 장비, 연료, 통신수단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특히 홍수나 산사태가 발생하면 도로와 철도가 끊기고 전력과 통신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차량과 중장비가 있어도 연료가 부족하면 신속한 출동이 어렵다. 의약품과 식량이 비축돼 있더라도 운송수단과 보관시설이 불충분하면 실제 재난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 매체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인민의 생명안전을 담보한다”는 구호만 되풀이하고 있다. 재난 대응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정보 공개나 외부 감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농업 피해 우려하면서도 만성적 식량난의 구조적 원인은 외면

북한은 농업 부문에서 배수체계를 정비하고 논밭의 배수로를 깊게 파며, 장마철 농작물 관리를 과학기술적으로 진행해 안전한 수확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농업의 취약성은 단순히 배수로를 정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산림 훼손에 따른 토사 유출, 노후한 관개시설, 부족한 비료와 농기계, 전력난, 취약한 농촌도로와 저장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산비탈의 토사가 농경지와 주택가로 쏟아지고, 가뭄이 발생하면 양수기와 관개설비를 가동할 전력과 연료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태풍과 홍수로 농경지가 피해를 입은 뒤에도 종자와 비료, 농기계 부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다음 농사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농업 실패의 구조적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농민과 지방간부들에게 “과학농사”와 “자력갱생”을 주문한다. 국가가 필요한 자원과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는 현실을 주민들의 정신력과 집단노동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낡은 산업시설과 철도망, 재해 앞에서 더 큰 위험

북한은 금속, 화학, 전력, 석탄, 철도운수 등 주요 경제 부문에서도 설비와 원료, 자재가 폭우와 강풍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후한 공장과 광산, 철도, 전력시설은 평상시에도 사고 위험이 높은 데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닥치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탄광과 광산의 갱도 침수, 노후 교량과 철로의 유실, 송전탑 붕괴, 화학물질 저장시설 파손 등은 주민의 생명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산업시설은 설비 교체와 안전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량 증대와 계획 수행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 대비까지 현장 노동자와 간부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과업을 부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해에 강한 산업체계를 구축하려면 노후설비 교체, 안전기준 강화, 독립적인 점검제도, 전문 구조인력 양성, 충분한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보도에서는 이러한 근본적 대책보다 “빈틈없는 대책”과 “동원 태세”라는 추상적 표현만 강조되고 있다.

재난 때마다 등장하는 김정은의 ‘애민 지도자’ 연출

북한은 대형 수해가 발생할 때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피해지역을 방문하거나 복구사업을 지휘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다. 당과 군이 동원돼 주택을 건설하고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장면도 체제의 우월성과 지도자의 애민정신을 보여주는 소재로 활용된다.

그러나 복구 현장의 정치적 연출과 재난 예방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피해가 발생한 뒤 군대와 주민을 대규모로 동원해 속도전을 벌이는 방식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지만, 취약한 제방과 배수망, 산림과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재난 피해 규모와 사망자 수, 이재민 현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중앙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방간부들이 처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피해를 축소하거나 보고를 지연할 유인도 존재한다.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체제에서 효과적인 재난 대응은 어렵다. 피해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고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같은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이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직면한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산간지역과 하천 주변, 낡은 주택과 취약한 공공시설에 의존하는 주민들은 작은 재해에도 생명과 생계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려 한다면 재해 대응을 ‘정치적 사업’으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행정적·재정적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군사력 강화와 대규모 정치행사, 우상화 시설에 투입되는 자원을 하천 정비와 주택 보강, 산림 복구, 기상관측, 의료·구호체계 확충에 우선 배정해야 한다.

또한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재난·기상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외부의 지원과 기술협력을 체제 위협으로만 간주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재해성이상기후에 철저히 대처하자”는 구호가 또 하나의 주민 동원 지침에 그친다면 북한의 재난은 자연이 만든 재해를 넘어 체제가 키운 인재가 될 것이다.

재난 앞에서 필요한 것은 충성 경쟁과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전한 기반시설, 충분한 물자, 투명한 정보, 그리고 주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 운영이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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